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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3한국전시관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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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3 > 재외동포신문에서 보도 (2004활동보고내용)
  2005/05/17 00:00
오두방정      조회 785  추천 2

- 1893 한국전시관복원 -

 

 

                                                          재외동포신문에서 보도

 

지난번 재외동포신문사 김제완 편집국장이 시카고를 방문해 나를 만난 일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이번 5월 16일자 재외동포신문(http://www.dongponews.net/)의 시카고 특집난에 <미주 한인 첫걸음 내디딘곳 - 시카고박람회와 한인사회 태동>이라는 제하의 뉴스로 다루었다. 연합뉴스 등에서 보도한 한국전시관이 세워져야 할 당위성은 잘 보도되었으나, 또 다른 연합뉴스 기사까지 되었던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당시의 한국대표단이 묵었던 정경원하우스 발견에 대한 기사는 빠져 있다. 다음 기회에 재외동포신문에서도 다시 다루어지기를 기대한다. 이번 재외동포신문에 보도된 기사 전문은 아래와 같다.

 

(05/17/05 오두방정)

 

 

 

 

 

미주 한인 첫걸음 내딛은 곳

시카고박람회와 한인사회의 태동

 

 

 

   
▲ 1893년 발행 The Book of the Fair에 실린 시카고박람회당시 한국전시관의 실제모습.
1492년 콜롬부스의 미대륙 발견 400주년 기념으로 1892년에 준비를 시작하여 이듬해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6개월간 47개국이 참가한 콜롬비아 세계박람회가 열렸다.

이 역사적인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처음으로  조선 조정의 대표단이 참가했다. 조선정부가 최초로 파견한 대표인 정경원(鄭敬源, 1841~ 1898)을 찾아온 사람들은 뜻밖에 현지 시카고에서 나타난 박용규와 서병규라는 두 명의 시카고 코리안들이었다. 이와같은 사실은 시카고 최초의 한인 역사를 20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게 하는 사건이다.

이조실록등 고증사료에서도 존재 기록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이들 두사람의 행적은 재미한인동포 기록의 역사를 19세기말 1893년까지 끌어올리게 함으로써 하와이보다 시카고 한인동포 역사를 최소한 10년 더 오래된 110년 이상의 역사를 끌어올리게 하는 의미를 가진다.

다시말해 재미동포 이민사가 102명의 한인이 갤릭호를 타고 화와이에 도착한 1903년 1월13일이 아니라 이보다 최소 11년 앞선 1893년에 시작된다는 것이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장 개회식에 참가했던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은 특별히 한국전시관에서 연주하는 조선 악공들의 연주를 듣고 목덜미를 끌어안고 감탄하기까지 했기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 역사는 미국 대통령과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열명의 코리안 악공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음반을 내기까지 했던 곳도 그 당시 시카고 박람회때였다. 시카고는 해외동포 문화역사의 시발지였던 것이다.

최근 ‘1893 시카고 한국 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회장 김성규)’는 코리아 전시관이 들어있던 거대한 건물의 주 전시관 내부의 전체 설계 도면을 입수함으로써 그 설계도 도면 안에 코리아 전시관의 구체적인 자리까지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성규회장은 당시의 한국전시관 진열실은 6∼7칸 정도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다고 확인했다. 그리고 전시장안에는 47개국의 국기들 중 주최국인 미국 국기 다음으로 쇄국정책을 풀고 참가한 조선 국기인 태극기가 걸렸던 것은 당시 시카고 박람회에 조선의 참가가 얼마나 환대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게 해준다고 말한다.

우리 민족 최초의 해외 현지에 세워진 전시관은  불행히도 박람회를 마친 이듬해인 1894년 7월 화재로 소실됐다. 다행히도 박람회 당시 전시되었던 한국전시관 물품들의 일부는 박람회가 끝난 직후 시카고 필드뮤지엄, 뉴욕 피바디 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기증됐다.

   
▲ 시카고 필드뮤지엄 큐레이터가 박물관 지하 소품창고에 잠자고있는 조선시대 총포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중서부 대표적인 자연사 박물관인 시카고 필드뮤지엄에는 100년전 한국전통 유물로 추정되는 희귀한 문화재 700여점이 보관중이다.

이 유물들중 300여점이 1893년 다운타운 하이드팍에서 열린 전세계 콜롬비안 박람회때 당시 한국정부(조선)가 파견한 통신 사절단이 가져온 유물인 것으로 확인됐고 나머지 400여점은 박물관측이 독일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회장은 “박용규ㆍ서병규라는 최초의 동포의 존재가 확인됐으므로 미주이민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고 “한국전시관 복원에 한국 정부는 물론 기업, 독지가들의 지원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시카고=박신규기자
skpark@koreadaily.net

 

2005년 05월 16일

 

 

 

 

(다음 자료는 2005년 5월 13일에 본국에서 발행되는 재외동포신문에 실릴 

기사용으로 시카고 중앙일보의 박신규 기자에게 보낸 자료임)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경과활동 자료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1893 Corea Exhibit Memorial Monument Association)의 활동은 대단히 획기적적인 해외 한국사적지 복원사업이다.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 (기념사업회 영문 이니셜 약칭 CEMMA)은 시카고 현지 미 주류사회에서는 기념 모뉴먼트를 짓기를 환영하고 있으며 한국정부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며 기념사업회는 한국대표단이 머물렀던 정경원하우스를 박물관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까지의 활동 경과 및 부록 자료들은 다음과 같다.  


 



1. 본 기념사업회의 목적

목적: 1893 시카고 콜롬비아 세계 박람회 당시 우리나라가 참가했던 Corea Exhibit (한국전시관) 기념물 조성 및 1893 Corea Exhibit Museum 건립.

기념물 조성 방법: 한국정부에서 해외 역사 사적지 차원에서 재정을 부담하고 시카고 시 정부의 외교적 협조를 받아 한국전시관이 있던 자리에 팔각정 기념물을 세우되 시카고 코리안 동포 및 전미주 나아가 전세계 코리안 해외동포들의 모금 참여를 유도한다. 1893 Corea Exhibit Museum 건립은 시카고 현지 동포들의 재정을 확보하여 건립하되 한국정부와 시카고 시정부의 그랜트를 유도해 낸다.


2. 한국전시관 (Corea Exhibit) 복원의 역사적 의미와 활동 경과 보고


 1) 이민사를 넘어선 새로 쓰게 될 최초의 해외동포사

(1) 지금까지 알려져온 1903년 중심의 미주 이민사 '1백년사'는 그 이상의 1893 시카고 박람회(공식 명칭 Chicago Columbian Expoisition)에서 시작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동안 1893 시카고 박람회 코리아가 참가했다는 사실은 알려졌었지만, 그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외 동포사의 시발점이라는 사실은 조명받지 못했으나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의 발족으로 Corea Exhibit은 새로운 역사적 사적지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2)  1893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 (Corea Exhibit)이 있었던 자리의 현재의 위치를 김성규 회장이 여러해 전에 블루 프린트를 입수해 최초로 현지의 어디인지를 찾아냈다. 따라서 피일차일 미루어지다가 이민 1백주년을 논하던 2003년에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가 조직 발표되었다. 기념사업회 회장은 한국전시관의 오리지날 위치를 최초로 답사하고 기념모뉴먼트를 조성할 것을 동포사회와 본국 언론에 크게 제시한 바 있다.  

3) 본 기념사업회는 '최초의 해외 동포사의 효시'로서 박용규와 서병규가 1893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당시 현지에 코리아 대표로 참가한 출품대원 정경원 앞에 나타났다는 사실을 발굴하여 그것이 '최초의 해외동포 역사의 효시'의 의미를 갖는다는 해석을 최초로 내리고 이곳 동포사회에 처음으로 크게 드러냈다. 박용규와 서병규는 여타의 19세기 미국내의 작은 행정 조사 기록속에서 오직 라스트 네임들만 보이는 편편들의 발견들과는 달리 완벽한 사료를 가진 인물들이라는 면에서 '정사에 속하는 최초의 해외동포사의 효시'이다. 특히 조선왕조실록 (고종순종실록)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본 기념사업회가 발굴한 미국측 기록에도 박용규와 서병규의 기록들은 상세히 나타난다. 박용규에 대한 기록은 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이 발굴한 World's Columbian Exposition Official Catalogue Part 8 p.171에도 나타나는 것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의 기록에서 크로스 입증이 되는 역사적 사실임을 드러냈다.

(4) 박람회 당시 10명의 고종임금이 보낸 악공들이 박람회 개장일 당일날 미국 대통령 스티브 클리블랜드 대통령앞에 조선 국악을 연주한 사실이 '대한민국 전통 예술의 최초의 해외 공연'이란 점을 드러냈다. 이에 대한 자료는 코리아 대표로 참가한 정경원의 일기문과 고종에게 보고한 정경원의 보고문(고종순종 실록)을 바탕하고 있으며, 각종 미국측 리서치에서도 드러난다.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그 뒤 조선 최고의 소리꾼인 박춘재가 시카고에 찾아와 납판 음반을 녹음한 사실이 '최초의 한국음반역사'라는 사실도 함께 강조하여 시카고는 '세계 해외 동포 문화의 발상지'라는 의미를 강조했다.


     2)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의 활동 경과 보고


1903년 하와이 이민을 기점으로 삼았던 '이민 1백주년' 행사가 만발하던 2003년 말 복원사업회는 진정한 해외동포사를 조명하기 위하여 발족하였다. 그 발족에는 시카고 한인 동포 학자들과 한인 사회 원로들을 고문단으로 세우고 미 주류사회에서 활동하는 젊은 현역 코리안들을 실행위원들로 구성하였다.

이미 2003년 1월 시카고 중앙일보에서 탑뉴스로 나가려고 했다가 여의치 못하여 2003년 6월 김성규 회장이 KAMAC 뉴스레타를 통하여 이러한 리서치 사실을 발표하자 시카고 한국영사관의 문화담당 권세중 영사가 전화를 해와 '한국전시관이 있었던 위치를 가보자'고 하여 처음으로 총영사관의 시선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시카고 동포사회에서 조직적인 구성을 위하여 시간이 걸리면서 2003년 12월 12일 시카고 한국일보의 탑뉴스로 '한국역사 복원한다'라는 타이틀로 나간 이후 시카고 동포들의 놀라운 뉴스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같은 달 12월 18일 시카고 한국문화진흥의 밤 행사 때에 본인이 준비한 파워포인트 프로그램으로 권세중 영사가 1893년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의 중요성을 브리핑했으며, 그 자리에는 많은 동포들이 참석했고, 일리노이 주 총무처 장관 제시 화이트씨도 참석하여 영어로 브리핑하는 것을 들었다. 그 행사의 휘날레는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의 시 <시카고 시카고 세계의 해가 뜬다>가 1백개의 촛불을 킨 채 낭송되었다. 그 내용은 1893년 시카고에서 세계 해외동포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담은 장문의 서사시였다. 이 시는 그 후 시카고 중앙일보에 전재되었으며 시카고 한미 텔리비젼에서도 방영된 바 있으며 시카고 한국 래디오 방송에서도 이경원 어나운서의 목소리로 방송된 바 있고 더불어 7월 22일부터 있었던 제2회 전세계한민족축구대회 전야제에서 5천여 동포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랜드 스크린에 1893 한국전시관 관련 사진들이 올라가면서 낭송된 바 있다. 이 시는 그 후에도 많은 동포들이 구하기를 원했고 시카고의 역사는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안 박람회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크게 인식을 전환시키기 시작했다. 이 역사적 시는 시카고문인회에서 발간하는 <시카고 문학> 제6호(2004년판)에도 특별히 게재되어, 표지 사진으로 한국전시관이 들어가면서 그에 대한 설명의 의미로 <시카고 시카고 세계의 해가 뜬다>가 소개되었다.

복원사업회 고문들과 실행위원들은 그동안 여러 차례 모임을 가져 그 활동 방안들을 논의하고 본격적인 기념사업을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 9월 처음으로 정경원 출품대원이 시카고 박람회 당시 6개월간 머물렀던 관사 건물을 찾아냄으로써 결정적인 1893 Corea Exhibit 박물관 건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게 되었다.


3.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 사업내용

1) 한국전시관 기념물 복원 사업

  한국전시관이 있었던 오리지날 위치에 상징적으로 팔각정과 연못을 조성하여 해외 동포 역사의 발상지를 영원히 기념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그 비용은 1백 5십만 달러 정도로 추정하고 한국정부에서 '대한민국 역사'의 사적지의 하나로 받아들여 그 비용을 다른 해외 한국 사적지들이 그렇듯이 한국정부에서 재정지원을 해주기를 요청해 놓고 있다.

2) 1893 한국전시관 연례 기념사업

 미국 대통령 앞에 10명의 악공들이 최초로 해외공연을 한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기념 공연을 한국 국립국악단 그룹을 초청하여 이곳 오리지날 한국전시관 자리에서 기념 행사를 가질 계획을 하고 그 행사는 그 다음부터는 이곳 국악 그룹들을 통하여 때로는 본국 국악단을 초청하여 연례행사를 할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이에 대한 비용은 한국정부의 간접적인 지원과 미주 동포들의 후원을 바탕으로 본 기념사업회에서 모금을 통하여 충당할 계획이다. 이러한 1893 한국전시관 기념사업은 매년 일으켜 나갈 주요 사업으로 다양한 '세계최초 동포문화사업'으로 발전시키고자 한다.   

3) 시카고 필드 뮤지엄 소장 Corea Exhibit 전시 유물 도록 작성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전시되었던 물품들이 뉴욕 피바디 박물관, 와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그리고 시카고 필드 박물관으로 보내졌다. 시카고 필드 뮤지엄을 중심으로 한국전시관 전시유물들에 대한 도록 작성은 시급한 일의 하나이다. 박물관의 협조를 받아 사진을 180여장 찍었으나 앞으로 재정이 확보되는대로 계속할 예정이다.

4) 시카고 필드 뮤지엄 소장 Corea Exhibit 전시 유물 임대 전시 프로젝트

 1893 시카고 박람회 참가 1백주년 기념으로 1993년 대전 엑스포가 열렸을 때 시카고 필드뮤지엄으로부터 1893 한국전시관에 전시되었던 물품들 가운데 29점의 한국유물을 임대하여 본국 나들이를 한 일이 있다. 그러나 한번도 모든 한국유물들이 햇빛을 본 일이 없다. 본 기념사업회는 필드 뮤지엄에 있는 380점에 달하는 19세기 유물(한국전시관 전시 유물을 필두로)을 임대 하여 시카고 동포들에게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이것이 성공되면 로스 엔젤레스와 뉴욕에서도 전시할 계획이다. 이에 대한 필드뮤지엄 측으로부터 허락은 본 기념사업회가 이미 받아놓고 있다.

5) 본 기념사업회는 금년 2004년 봄에 이미 비영리 단체로 주정부와 연방정부로부터 단체 허가증을 받았다.

6) 시카고 중앙일보 25년 역사에서 본 기념사업회가 처음으로 단독 3회 연속 탑뉴스를 차지하기도 했을 정도로 시카고 언론들은 본 기념사업의 중요성을 지금까지 크게 보도해왔다. 특히 한미 텔리비젼의 조광동 부사장의 토크 대담프로그램인 <시카고 한인역사 뿌리를 찾는다> 프로그램은 2004년 6월 7월 매주 토요일 밤 11시부터 12시까지 한 시간 동안 내보내는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한미 텔리비젼 역사상 최초로 연속 4회에 걸친 김성규회장 대담프로그램을 내보내기도 하여 많은 동포들에게 시카고의 역사적 사실이 환기되기도 했다.

7) 지난 4월 15일 한미역사학회 초청으로 김성규 회장은 시카고 한인 커뮤니티 센터에서 많은 문화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1893 한국전시관 복원의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강의하였으며 이 자리에서 파워포인트 프로젝트를 통하여 한국전시관은 물론 박람회 당시 유물들의 사진들도 소개한 바 있다.   

8)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열리는 미국 전체 한국학교협의회 총회에서 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은 역사 문화 특강 강사로 초빙되어 약 600여 한국학교 교장 및 교사들에게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의 의미에 대하여 강연한 바 있다.

9) 노스 이스턴 대학에서 가까운 기간내에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에 대한 사진 전시회 및 1893 시카고 세계박람회와 한국전시관에 관한 세미나를 개최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10) 한국전시관 바로 앞에 있던 실론 전시관 건물의 부분으로 지은 건물을 김성규 회장은 일리노이 북쪽 농촌 외딴 집에서 발견하였다.

11) 본 기념사업회는 6월 19일 (지난주 토요일)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노르웨이 전시관 건물을 옮겨다 놓아 역사 유적 관광지로 연중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위스칸신주 리틀 노르웨이의 연례 축제에 참가하여 한국전시관 사진 등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코리아의 참가에 관한 사진을 전시하여 코리아의 역사의 위상을 크게 알렸다.

12) 리틀 노르웨이의 스캇 윈너씨와 더불어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참가했던 47개국(비공식 참가국을 합하면 79개국)들의 1893 시카고 박람회 관련 정보와 역사를 함께 나눌 '시카고 세계 박람회 기념사업회'를 추진하고 있다. 이미 5개 참가국가 관련자들과 연결되어 있다.

13) 이곳 시카고 한국 래디오 방송 이인숙 보도국장이 본 기념사업회의 내용을 주제로 한국 KBS '서울 프라이즈' 방송제에 15분짜리 녹음 방송 프로그램을 통하여 그랑프리 대상을 차지하여 상금 2천5백 달러를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김성규 회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는 물론 본 기념사업회 고문으로 있는 한미역사학회 함성택 박사, 듀폴대학 최진욱 교수, 노스이스턴대학 박규영 교수의 견해까지 포함되어 있다.

14) 시카고 한미 텔리비젼은 본 기념사업에 관한 뉴스를 YTN 뉴스(international 색션)에 송출하여 방연한 바 있다. 더불어 6월 28일에는 본국의 연합뉴스에서도 왕길환 기자가 김성규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를 한 취재를 터로 <미주 이민사 1893년에 시작>이라는 제하의 전국뉴스로 보도되어 그것을 인용한 전미주 각지역 신문에도 보도되어 크게 알려진 바가 있다. 2004년 여름에 출판된 전미주코리안아메리칸총연합회 이사장인 김창범 저 <이민 100년사>에 1893 한국전시관 관련 사진과 그 역사적 사실이 처음으로 포함되어 간행되기도 했다.

15) 본국 중앙일보 김동섭 기자가 시카고 현지에 와서 1893 한국전시관이 있었던 위치를 답사하고 본 기념사업회 활동에 대한 뉴스를 본국 중앙일보 11월 15일자에 보도했다. 그 내용 가운데는 본국의 기업이나 정부가 본 한국전시관 복원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가 들어 있으며 더불어 기념사업회 김성규회장이 위스칸신주에서 발굴한 19세기 태극기 (태극기 바탕에 Corea가 새겨져 있다)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태극기는 시카고 박람회 당시의 'Corea'가 그대로 사용되어 있는 태극기라는 면에서 적어도 1893 시카고 박람회의 Corea와 무관할 수 없다는 의미가 있다는데서 본 기념사업회와 대단히 운명적이고 역사적인 인연의 의미가 있다.

16) 1893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장이었던 현장이 지금은 잭슨 공원으로 되어 있다. Jackson Park Advisory Council은 1893 시카고 박람회에 대한 기념사업을 겸하고 있다. 김성규 회장 앞으로 JPAC측은 초청공문을 보내와 현장에서 지난 7월 12일(2004년) 프리젠테이션을 한 바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11년만에 시카고 박람회 장소에서 역사적인 코리안 프리젠테이션

지난 7월 12일(월) 잭슨공원  필드하우스 (6401 S. Stony Island Avenue, south room)에서,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은 잭슨공원 자문위원회(Jackson Park Advisory Council)로부터 초청을 받아 1893 한국전시관과 복원기념사업회(CEMMA)에 관한 프리젠테이션 행사를 가졌다. 이날 프리젠테이션을 위하여 파워포인트 컴퓨터 슬라이드로 강의한 김성규 회장을 비롯하여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측 고문인 함성택 박사(한미역사학회 회장), 임선빈 박사(중서부 사회문제연구소 소장), 명계웅 교수(노스이스턴대학) 그리고 기념사업회의 실행위원으로 한인사회복지회 손미니 코디네이터 및 한인 커뮤니티의 기자들이 참석했다.   

이날 모임에는 20여명의 JPAC 카운슬 위원들이 참석하여 김성규회장의 영어로 진행한 40여분간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었고 많은 질문이 펼쳐지는 등 뜨거운 관심을 보여주었다. 잭슨공원은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이 있던 자리로 향후 복원 기념물을 세울 현장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날의 잭슨공원 자문위원단들과의 만남은 대단히 의미있는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날의 프리젠테이션은 111년전 시카고 박람회 당시 코리아가 현지에 참석한 이래 처음으로 코리안이 현장에 한국전시관 행사의 일로 참석하여 역사적인 순간이 되었다. 기념사업회측은 별도로 준비해 간 복원기념사업회 활동 및 Corea Exhibit과 코리아 대표 정경원 사진 및 시카고에서 나타난 두 명의 최초의 코리안 중에 최근 확보한 서병규의 사진 등을 전시하여 많은 관심을 받았다. 향후 JPAC측과 복원기념사업회측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을 상호 다짐했다.

17) 잭슨공원 프리젠테이션 행사가 있은 직후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에 대하여 시카고 지역신문이 크게 보도하여 주류사회 언론이 첫 반응을 보였다. 7월 28일자 Hyde Park Herald紙는 표지에 안내 기사까지 실어 3면에 한국전시관 복원에 대한 뉴스를 크게 다루었다.

미 주류사회 언론으로서는 한국전시관 복원사업에 대하여 처음 보도한 이 신문은 그 제목에서도 높은 관심을 가지고 한국전시관이 잭슨파크 공원내에 세워질 것이라는 "Jackson Park to Erect 1893 Korean Memorial"의 타이틀로 한국전시관(Corea Exhibit)의 복원의 가능성을 지역 커뮤니티에 크게 알렸다.

18) 지난 6월 미중서부 한국학교협의회 <역사문화제>에 본 기념사업회에 관한 사진과 포스터를 전시하고 김성규 회장은 소개 스피치를 했다. 더불어 한글 알파벳을 중심한 그동안 김성규 회장이 준비해온 한글 틀시에 관한 전시도 함께 했다. 지난 7월 22일-24일 조지아주 아틀란타에서 있었던 제22회 전국한국학교협의회 세미나 겸 총회에서 김성규 회장은 특강을 한 이래, 8월 28일 중서부 한국학교협의회 교사연수회에서도 150여 미중서부 한국학교 교사들이 참석한 가운데1893 한국전시관복원과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강의를 했다. 이 특강은 한국학교협의회가 2세교육에서 얼마나 1893 한국전시관이 중요한 사실인지를 충분히 납득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19)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 활동이 크게 드러나자 시카고 한인사회에서는 '문화회관 건립 추진'에 대하여 크게 자극이 되기도 했다.  

20) 하루빨리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의 사무실을 단독적으로 마련하고 이 역사적인 기념사업이 성공되도록 전미주 동포사회는 물론 대한민국 본국으로부터 뉴스매체들은 물론 정부 당국 기업체들까지 한국전시관 복원을 위하여 물심 양면 지원이 필요한 실정이다.

21) 미네소타주에서 영문으로 발행하는 한국문화관련 계간지 KOREA QUATERLY 2004년 겨울호에 1893 한국전시관에 대한 특집이 실렸다. 이에 대한 취재를 위하여 마르다 비커 편집장이 직접 본 기념사업회를 방문하고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 자리를 김성규 회장의 안내로 현장답사하였다.  

22) 지난 11월 <통일한국> 월간지를 발행하기도 하는 본국 평화통일연구소 관계자들이 시카고를 방문하면서 1893 시카고 박람회 현장을 답사하고 <통일한국>에 특집으로 다룰 것이라고 했다.

23) 본 기념사업회의 활동을 성원하기 위하여 공식 모금행사를 갖기 전이지만 석균쇠 전 한인회장과 밀알교회를 30여년 담임한 문장선 목사 두분이 각각 본 기념사업회 활동에 써달라며 1천달러씩을 쾌척하였다. 보다 많은 동포들이 기념사업회를 지원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4) 지난 8월 14일 시카고 브린마 길에서 있었던 코리안 페스티발에서 1893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는 전시 부스를 마련하여 축제 참가자들에게 기념사업회 내용에 대하여 홍보활동을 펼쳐 많은 호응을 받았다. 특히 그 자리에서 유명한 시카고 동포 아티스트인 고은아 제프 버릴 부부 조각가들이 나타나 기념물을 자신들이 조각할 것이라고 제안했으며 그로부터 시작하여 한국전시관 복원 미니어쳐는 거의 완성단계에 와 있다.

25) 이미 시카고 다운타운의 LaSalle 거리와 Division거리의 코너에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의 트랜스포테이션 빌딩의 입구였던 Golden Door의 아름다운 조형을 벽화로 그린 것에 대한 보도가 나가기도 했지만, 1893 시카고 박람회 당시에 사용되었던 티켓부스를 옥팍 동네에서 찾아내 7월 21일 시카고 한미 TV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 티켓부스는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당시에 티켓 부스였던 것으로 현재 시카고의 옥팍(Oak Park) 동네의 유명한 프랭크 로이드 라잇트 건물 뒷뜰에 옮겨져 지금까지 남아 있다. 111년 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가 개최되었을 때 코리아 대표로 참가한 정경원 출품대원 앞에 두 명의 '최초 미주 동포' 박용규와 서병규가 나타났을 때, 그들이 박람회 입장 티켓을 사서 티켓 부스를 통과했을  것은 물론이다. 그렇게 본다면 1893 시카고 박람회 티켓부스는 어쩌면 박용규와 서병규가 해외 동포로서 최초로 들어간 유서깊은 '대문'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26) 최근 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은 오랜 계획과 치밀한 조사 끝에 또 하나의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굴해냈다.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당시 고종 임금이 파견한 정경원 출품대원이 박람회 기간인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1일까지 6개월동안 머물렀던 '코리아 관사' 건물을 찾아낸 것이다.

로스엔젤레스에서 도산 안창호의 집이 사적지로 복원되는 마당에 19세기 최초로 고종임금이 시카고 현지에 파견한 정경원이 6개월간 머물렀던 '코리아 관사'는 미주 이민사의 시작의 자리라는데서 대단히 역사적인 의미를 가지는 미주 동포사의 사적지 중의 사적지가 된다. 특히 이 건물은 최초의 미주 동포로서 최초의 현지 고용인으로 일했던 박용규와 서병규가 함께 머물렀던 집이란데서도 그 의미는 더욱 큰 것으로 평가되며 1893 COREA EXHIBIT MUSEUM으로 사용될 수 있는 사적지다. 본 기념사업회는 이 건물을 매입할 계획을 추진중에 있다. 동포 독지가들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4. 미주 동포 독지가들과 한국정부로부터 지원요청

본 사업회는 해외 동포들의 염원이 담긴 ‘세계 최초 해외동포 발상지’에 기념물을 조성하는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한국의 역사적 해외 유적지에 기념물을 조성하는 만큼 대한민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재정정 외교적 지원을 요청한다. 자랑스러운 시카고 박람회 참가 당시의 최초로 행사장에 태극기를 게양했던 현장에 기념 모뉴먼트를 세우도록 모든 해외 동포들은 물론 본국 정부와 국민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은 한국전시관 복원과 더불어 정경원 대표가 머물렀던 관사를 매입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본국 정부로부터나 기업 그리고 본국이나 시카고를 비롯 미주 현지 동포들의 개인 또는 독지가들로부터 본격적으로 지원을 받아야 할 단계에 이르렀다.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든 분들의 전격적인 응원과 지원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


 


 



             KOREAN QUARTERLY 2004 겨울호에 기사화
  
        -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2004 활동 경과보고 -


이미 예고한대로 미네소타주에서 영문으로 발행하는 KOREAN QUARTERLY 겨울호에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에 대한 기사가 오늘 나왔다. "Scattered Puzzle Pieces"라는 타이틀에 "How new 1893 Chicago Exposition discoveries could change the history of Korean American"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기사는 영문으로 코리안 아메리칸들의 문화를 미 주류사회에 알리는 계간지에 게제되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Martha Vickery 편집장이 직접 글을 쓴 이번 기사는 한국전시관 사진과 정경원 사진 그리고 그 때 '최초의 두명의 코리안 아메리칸'의 한 사람으로서 '박용규' 사진이 실렸고 한국전시관이 있었던 자리에 선 내 사진과 1893 시카고 콜롬비안 엑스포 당시의 기념물인 Golden Lady 동상 앞에 선 내 모습을 함께 싣고 있다. (아래 첨부하는 사진 참조)

비커 편집장은 직접 내 사무실로 와서 파워포인트로 설명하는 나의 브리핑을 듣고 인터뷰를 했으며 직접 현장에 찾아가서 나의 안내를 받고 사진을 함께 찍기도 했던 현장답사를 열성적으로 한 기자다 (위의 사진). 내가 인터뷰에서 답변한 내용을 소상히 보도한 것으로 기존의 코리안 아메리칸의 이민 역사를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는 챌런징을 강조하고 있다. 장문의 원문을 비커 편집장으로부터 이멜로 받는대로 원문게재하도록 할 것이다.

아래는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가 작년 2003년 12월 12일 발족된 이래 지난 2004년 한 해동안 활동해온 발자취를 담은 기념사업회의 Annual Report로서 2004년에 기념사업회를 위하여 응원하거나 활동하신 분들을 중심으로 발송되었던 내용이기도 하다. 몇몇 아주 가깝게 자주 만나는 분들은 메일 발송을 하지 않고 근간에 모임에서 전달할 예정이다.


 


잭슨공원 지역 시의원 사무실에서 프리젠테이션


                            


1. 제5지구 시의원 헤어스톤 사무실에서 프리젠테이션 및 관계자들과 한국전시관이 세워질 부지를 둘러보다.    


 


지난 5월 5일엔 시카고 박람회 당시의 화이트시티 지역의 현재의 위치인 잭슨공원 일대인 제5지구 헤어스톤 시의원 사무실에서 프리젠테이션을 가졌다. 팔각정 건물이 들어설 가상 사진 설계도면을 동원한 파워포인트로 내가 직접 브리핑을 한 이날 모임엔 환태평양문화재단 임관헌 이사장(평화통일 연구소 간행 월간지 통일한국에 보도된 기념사업회 관련 글에서 소개한 바 있다), 건축설계사이며 한미장학재단 회장인 김진환 회장, 시카고 한인사회에서 가장 활발한 관광사업을 벌이는 국제여행사 사장이며 전 문인회 회장인 강성영 회장이 함께 참석했다. 이날 한미TV(UHF Ch. 28)의 배혁 기자가 전체 과정을 담아 5월 7일(토) 저녁 뉴스에 내보내 시카고 동포 시청자들이 모두 이 사실을 알렸다.


 


JPAC 즉 잭슨공원 자문위원단으로부터 만장일치로 통과된 기념사업회의 프로젝트는 해당 지구 시의원실에까지 연결시켜 헤어스톤 시의원 공원담당 비서인 모르스 리씨와 JPAC 로스 피터슨 부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전체 프로젝트의 내용을 들었다. 늦게 도착한 헤어스톤 시의원과도 대화를 하여 현재 기념사업회가 추진하고 있는 기념 팔각정 건축 계획은 아무런 장애없이 진척되도록 배려되었다. 프리젠테이션을 마친 우리는 JPAC 피터슨 부회장의 안내로 한국전시관 팔각정이 세워질 잭슨공원 안 부지 현장까지 모두 가서 풍치를 둘러보면서 환담을 나누고 앞으로의 계획들에 대한 나의 설명을 들었다.


 


단순한 서양식 돌 기념비가 아닌 기와를 올린 팔각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나의 프리젠테이션과 함께 김진환 회장의 건축적인 면에서 부지의 중요성과 더불어 임관헌 회장의 지원 설명 그리고 한국전시관 복원은 이 일대의 투어리즘을 증대시킬 것이란 점에서 많은 코리안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될 것이라는 프리젠테이션의 내용의 구체적인 관광 안내 계획 등에 대하여 국제여행사 강성영 사장의 부가 설명도 곁들여졌다.


 


함께 참석한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함께 챠이나타운 휘닉스에서 저녁을 함께 한 후에 이분들과 함께 42번가의 정경원 하우스를 방문하여 기념촬영을 했다. 더불어 챠이나 타운의 비디오 가게를 들러 한국 드라마와 DVD 등의 이른바 '한류' 분위기에 대하여 내가 안내하고 설명을 했다. JPAC 뉴스레터 4월호는 지난번 3월 16일에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기념사업회의 한국전시관 복원에 대한 내용을 JPAC 사무총장 오스왈드씨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이 게재하였다.   


 



Korean commemorative monument


 


Members of the Corea Exhibition Memorial Monument Association (CEMMA) and the Korean Trade Association of Chicago presented and discussed background and research on the Korean exhibit and its location at the World’s Columbian Exhibit of 1893 as well as coverage and great interest both in the Korean community in Chicago (including a prize-winning video) and in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exhibit and in a establishing a commemoration of the 1893 Korea exhibit and related events in Jackson Park. Presenters proposed and a showed an architectural presentation rendering of a sloped tile-roof, open columned structure to be located overlooking the south end of the East Lagoon, not far from where the original exhibit stood in the Manufactures and Liberal Arts building and from the new boardwalk and overlook, and with a long vista to Osaka Garden and the Darrow Bridge vicinity beyond.

The presenters stated that their organizations would undertake to fund and maintain the monument. Petersen moved that JPAC give and forward its approval and endorsement of the proposed monument. Members discussed reservations, particularly about precedents, possible size, and siting relative to standing water. The motion was approved by large number.

The organizations were advised to give their presentation to Alderman Hairston for her consideration, then to contact the Planning and Development Department of the Chicago Park District. All parties were thanked.


The meeting was adjourned at 8:35 pm. Next meeting April 11, 2005 at 7:30 pm at the fieldhouse.







DEC 20, 2004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회장 김성규  
 Tel: (847) 204-6011 odu@sbcglobal.net 



                      한국 첫 참가 세계박람회 대표단 숙소 찾아내다!


    - 본 기념사업회 정경원 하우스 발견 연합뉴스 보도, 디지틀 조선일보도 -

 

우리나라가 세계에 첫 대면을 한 것은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서라는 것은 이미 크게 알려졌다. 그러나 유사이래 최초의 국제행사에 참가한 한국전시관 위치를 찾아내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대표단이 머문 숙소를 찾아내는데도 여간한 힘이 든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어렵사리 찾아낸 이 두 중요한 장소 모두를 나의 조국의 연합뉴스에서 보도해주고 내가 오랫동안 활동해온 조선닷컴에서도 정식으로 기사화 해주니 이제 객관적인 사실로 받아들여져 안도의 마음이 든다.

 

많은 어려움 속에 보도 자료를 보내고 이와같은 본국 연합뉴스와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중요한 미디어들이 보도하는 것은 뉴스를 내기 위한 뉴스가 아니라 1893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가 추진하고 있는 시카고 세계박람회장에 역사적인 대한민국 해외 사적지로 한국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전시관( Corea Exhibit) 기념 팔각정을 세우고 아울러 이번에 발견된 한국 대표단 숙소가 사적지로서 박물관이 되어 우리나라의 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크게 홍보하고 응원을 받고자 함이다.  

 

지난번 "한국관 위치"를 찾아낸데 대한 정정 보도를 낸 이래 2005년 4월 3일자 연합뉴스는 "한국 첫 참가 세계박람회 대표단 숙소 발견"이라는 제하에 내가 보낸 사진자료와 함께 한 페이지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 내용은 구글, 엠파스뉴스, 야후코리아 등 많은 인터넷 포털사이트들에서도 뉴스로 인용되었지만, 이번에는 디지틀 조선일보에서도 해당 연합뉴스를 그대로 인용보도 해주어 반가운 일이다. 기념사업회 뉴스가 지금까지 본국 연합뉴스에 세번 보도된 바 있지만 이번 연합뉴스의 '정경원 하우스 발굴'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 전문은 다음과 같다.


 

한국 첫 참가 세계박람회 대표단 숙소 발견


서울=연합뉴스

입력 : 2005.04.03 06:46 28'


 











▲ 정경원 하우스 /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김성규회장 제공
한국이 최초로 참가했던 1893년 미국 시카고 잭슨공원에서 개최된 ‘콜럼비아 세계박람회’ 당시 조선대표 정경원(鄭敬源.1841-1898년)이 6개월 간 묵었던 숙소가 발견됐다.

고종은 박람회에 출품대원(出品隊員.수행원)이었던 정경원을 비롯한 악사 10명을 박람회에 파견했다. 악사들은 미국전시관 앞에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전통음악인 ‘황풍악(皇風樂)’을 연주했다.

‘1893년 한국전시관 복원 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은 3일 “정경원의 숙소는 시카고 남부 42번가 736번지에 있으며, 당시 박람회가 열렸던 곳과 약 3마일 정도 떨어져 있다”고 연합뉴스에 e-메일로 알려왔다.

김 회장은 “박람회 당시 주소를 확보했지만 현재의 주소와 대조가 어려웠다”며 “하지만 최근 옛 주소와 현 주소를 비교할 수 있는 고지적도를 찾아 정확한 주소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경원 숙소’는 현재 아파트 형태의 건물로, 3가구가 모여 살고 있다.

그는 “수행원들이 묵었던 숙소는 한국 최초의 해외 행사 본부이자 한인 거주지, 나아가 영사관 같은 정부 기관 구실을 했다”며 “이를 구입해 박물관 및 박람회 인포메이션 센터 등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는 이번 숙소 위치 확인은 물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이 있었던 자리를 처음으로 찾아내기도 했다. 한국관은 현재 63번가 도로의 중간 지점, 즉 잭슨공원 축구장 동쪽 골대 뒤편에 위치해 있었다.


 




  <첫 참가 세계박람회 한국관 위치놓고 이견> 2005/02/23 10:20 송고


첫 참가 세계박람회 한국관 위치놓고 이견

<사진있음>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한국이 사상 최초로 참가했던 세계박람회의  한국관 위치가 현재 시카고 잭슨공원 내 동쪽에 있는 작은 연못(East Lagoon) 바로 옆 골프장이라는 주장에 대해 현지 동포가 이는 정확한 위치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국의 첫 세계박람회 참가는 조선조 말엽인 1893년 미국 시카고  잭슨공원에서 열린 `콜럼비아 세계박람회'이다.

   한ㆍ미 관계사를 연구하는 대림대 이민식(65) 교수는 지난 13일 박람회  공식지도와 사진 등 1893년 당시 자료를 토대로 위치를 추적한 후 잭슨공원 관리자의 확인을 거쳐 한국관 위치가 골프장이라고 주장했었다.(연합뉴스 2월13일 기사참조)
   이에 대해 김성규 `1893 한국전시관 복원 기념사업회' 회장은 23일 한국관 위치에 대해 "연못 남쪽 변에서 정남으로 현재의 63번가 도로의 중간 지점, 정확히   말해 잭슨공원 축구장 동쪽 골대 뒤편"이라고 연합뉴스에 e-메일로 알려왔다.

   김 회장은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박람회 메인 전시관의 전체 설계도면을 1997년 찾아내 공개했고, 2003년 말  한국전시관의 정확한 위치에 기념물을 조성할 것을 제안하며 기념사업회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이런 반박에 대해 이 교수는 이날 "한국관 위치는 이스트 라군 남쪽 연못가  동쪽 방향"이라며 "그 곳이 골프장에 가깝다"고 재차 주장했다.

   한편 2000년 서양미술사학회에 `박람회라는 전시공간: 시카고 만국박람회의  조선관 전시'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영나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한국관은  메인 전시관에 마련된 작은 부스여서 정확한 위치에 대한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관은 47개 참가국 중 태국 전시관과 함께 가장 작았지만 한국인이  최초로 세계적인 행사에 참가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

   고종은 당시 이 박람회에 수행원 2명, 악사 10명을 보냈고, 출품대원(出品隊員. 수행원)이었던 정경원(鄭敬源.1841-1898년)의 일기는 `정경원 문서'로 보존돼 있다.

   ghwang@yna.co.kr
(끝)





부 록 1 (기념사업회 발족문)


1893 한국전시관(Corea Exhibit)복원기념사업회 발족에 즈음하여

 지금으로부터 110년 전 시카고에는 한옥기와집을 지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시카고는 세계 해외 코리안 동포 역사상 가장 중요한 역사적 사실이 일어난 곳입니다. 금년 2003년은 한인 이민 '1백주년'으로서 1903년 제물포항에서 출발한 103명을 태운 겔릭호가 하와이에 처음 도착했다는 사실이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시카고는 그보다 먼저인 19세기말에 이미 두 명의 코리안이 와있었다는 분명한 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카고 현지에서 구워 지붕을 올린 한옥 기와집에서 현지고용인으로 일을 했습니다.
1492년 콜롬부스의 미대륙 발견 4백주년 기념으로 1892년에 준비를 시작하여 이듬해 1893년 5월 1일부터 10월 30일까지 6개월간 47개국이 참가한 콜롬비아 세계박람회(Columbia Exposition)가 열렸습니다. 화이트 시티(White City)라는 이름까지 가진 방대하게 설계된 박람회 현장은 현재의 시카고 산업과학박물관에서 시작하여 그 남쪽 젝슨공원(Jackson Park) 인근 57번가와 67번가 일대에서였습니다. 세계 최초로 발명한 지퍼가 출품되기도 했던 이 세계적인 콜롬비아 박람회는 콜롬부스 후손을 초청한 연인원 2천7백만명이 입장했던 거대한 국제적 행사였습니다.
 이 역사적인 1893년 시카고 박람회는 한민족 유사이래 다국가들이 참가하는 국제 행사에 최초로 조선 조정의 대표단이 참가한 행사였습니다. 조선정부가 최초로 파견한 대표인 정경원(鄭敬源, 1841-1898)을 찾아온 사람들은 뜻밖에 현지 시카고에서 나타난 박용규와 서병규라는 두 명의 시카고 코리안들이었습니다. 이와같은 사실은 시카고 최초의 한인 역사를 20년 이상 끌어올릴 수 있게 하는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나아가 이들은 뚜렷한 신분과 역사적 기록을 가진 최초의 현지인 코리안 동포의 행적을 가진 해외동포역사의 효시로 평가되어 마땅합니다. 이 사실은 시카고 코리안 동포역사가 세계 해외동포역사의 시작의 자리에 서 있다는 뜻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시카고 박람회 출품대원으로 파견되어온 정경원이 고종에게 올린 어전보고 서신(1893년 음력 3월 18일: 양력 5월 3일)에서 당시 시카고 박람회에서 만나 6개월간 현지 고용까지 된 이들 시카고 사람들인 박용규(朴鎔圭) 서병규(徐丙珪)에 대한 <高宗實錄>의 기록과 정경원의 후손들이 소장하고 있는 당시의 가문 기록들은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유학와서 주저앉은 뒤의 사료로서도 분명한 기록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최초의 두 명의 해외동포로서 시카고 현지에서 나타난 이들 두 사람의 현지 행적은 재미한인동포 기록의 역사를 19세기말 1893년까지 끌어올리게 함으로써 이민 1백주년을 맞이한 하와이보다 시카고 한인동포 역사를 최소한 10년 더 오래된 110년 이상의 역사를 끌어올리게 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당시 시카고 박람회장 개회식에 참가했던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은 특별히 한국전시관에서 연주하는 조선 악공들의 연주를 듣고 목덜미를 끌어안고 감탄하기까지 했기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 역사는 미국 대통령과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열명의 코리안 악공들 가운데 한 사람이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음반을 내기까지 했던 곳도 그 당시 시카고 박람회때였습니다. 시카고는 해외동포 문화역사의 시발지였던 것입니다. 1893년 9월 5일 코리안 전시관이 주최하여 오후 7시 콩그레스 길과 미시간 길에 있는 오디토리움 호텔에서 1백여명이 참가하는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현재의 루즈벨트대학 공연강당인 이 건물은 코리안 최초의 역사적인 해외 국제 연회장이었던 셈입니다.
 이같은 사실의 발굴과 더불어 시카고 박람회 당시 한국전시관에 대하여 그동안 분명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했던 Corea Exhibit의 현재의 위치를 명확히 알아낼 수 있게 된 것은 크나큰 수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코리아 전시관이 들어있던 거대한 건물의 주 전시관 내부의 전체 설계 도면을 입수함으로써 그 설계도 도면 안에 코리아 전시관의 구체적인 자리까지 발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당시의 한국전시관 진열실은 6∼7간 정도의 맞배지붕 기와집이었습니다. 총전시장인 Manufactures and Liberal Arts 빌딩 안에는 총 47개국의 국기들 가운데 주최국인 미국 국기 다음으로 쇄국정책을 풀고 참가한 조선 국기인 태극기가 걸렸던 것은 당시의 시카고 박람회에 조선의 참가가 얼마나 환대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게 합니다. 박람회 당시 설계도면은 물론 후버트 밴크로프트(Hubert Howe Bancroft)가 썼던 시카고 박람회 전시 안내 책자인 'The Book of the Fair'(1893)에 따르면 코리아 전시관은 주 전시관 (Manufacture and Liberal Arts building) 내부에 위치하고 있었고 넓이는 899 평방 피트였습니다. 주미조선공사관 서리공사 이채연의 지휘로 총공사비 $500달러로 이루어진 한국 전시관 공사는 1892년 2월(음력 1월) 시작했으나, 박람회 개회일인 1893년 5월 1일까지도 건물공사가 미완인 채 개문하였고 그 나머지는 행사 중에 공사를 완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우리 민족 최초의 해외 현지에 세워진 Corea Exhibit은 불행히도 박람회를 마친 이듬해인 1894년 7월 철도노조원들의 파업으로 박람회 현장인 화이트시티가 불타면서 함께 사라졌습니다. 박람회 당시 전시되었던 한국전시관 물품들의 상당수는 박람회가 끝난 직후 시카고 필드뮤지엄, 뉴욕 피바디 박물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기증됐습니다. 현재 시카고 필드뮤지엄에 소장되어 있는 당시의 한국 전시관의 물품들을 전시할 공간의 마련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는 일은 세계 코리안 해외동포 역사의 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역사적인 Corea Exhibit 기념물을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미 일본인들은 앞서 일본전시관 기념물을 복원한 마당에 우리에게는 다소 늦은 감마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본전시관이 철도파업으로 화이트시티와 함께 폐허가 된 이래 시카고에 사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시카고 박람회 당시 일본전시관 자리였던 산업과학박물관 남쪽에 일찍이 Japanese Tea Garden으로 재정비하고 1981년 다시 손을 보아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그후 1992년 리챠드 M 데일리 시카고 시장이 시카고와 오오사카의 자매결연을 기념하여 오오사카 가든으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시카고 코리안동포들의 입장에서는 이제까지 Corea Exhibit(한국전시관)의 그 오리지날 위치마저 분명히 알 수 없었다가 이제나마 그 역사적 본래의 위치를 찾아내 한국전시관 복원기념비를 건립할 사업회를 결성하게 된 것은 크나큰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해외 현지에서 최초로 기와를 구워 올린 한국전시관은 우리민족 역사상 최초의 국제행사와 함께 최초로 태극기가 자랑스럽게 걸렸던 최초의 현지 기와집 건물이기도 했습니다. 63번가와 레이크쇼어 드라이브 인근에 있었던 한국전시관의 복원은 시카고 남부에서 지금도 그 어느 타민족들보다 특히 코리안들의 생업의 현장이기도 한데서 더욱 유서깊은 곳이기에 이러한 역사적 한국전시관 복원은 시카고시는 물론 시카고 한인동포들과 해외동포 모두의 숙원사업이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에 시카고 코리안 동포들의 뜻있는 분들이 힘을 모아 '이민 1백주년의 해'를 넘기기 전에 한국전시관의 기념물로 Corea Exhibit이 있었던 유서깊은 자리에 기와를 올릴 팔각정 기념물을 만들고자 <1893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를 발족한 것입니다. 한국정부와 미국정부의 외교적 도움을 터로 향후 하나하나 진척되어 가게 될 본 기념사업은 주시카고한국총영사관의 2004년 후원사업의 하나이기도 한 역사적인 Corea Exhibit기념복원사업이기도 합니다. 본 기념사업을 위하여 시카고 한인회와 더불어 후원에 나서주신 시카고 동포 단체 및 동포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앞으로도 각별한 관심과 참여 및 응원을 기대해 마지않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3년 12월 11일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The Corea Exhibit Memorial Monument Association (CEMMA)



부 록 2 (연합뉴스에 보도된 본 기념사업회 활동 내용)

2004년06월27일 05:46

            "미주 이민사 1893년에 시작"
(서울=연합뉴스)

"재미동포 이민사는 102명의 한인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한 1903년 1월 13일이 아니라 이보다 최소 11년 앞선 1893년에 시작된다.
" `1893년 시카고 한국전시관복원 기념사업회' 김성규 회장은 27일 "1893년 시카 고 박람회에 한국이 참가했다는 사실은 알려졌지만 그것이 미주 한인 이주사의 시발 점을 알려주는 단서라는 사실은 알려지지 않았다"며 "앞으로 이를 알려나갈 것"이라 고 전화통화에서 말했다.

정부와 재미동포 사회가 1903년 1월13일을 기점으로 지난해에 미주한인 이민 10 0주년 기념 행사를 대대적으로 개최한 것과는 다른 견해이다.

김 회장은 "재미동포 이주사의 개념은 이민 말고도 유학 와서 주저앉은 경우도 마땅히 포함돼야 한다"며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당시 통역을 맡았던 두 명의 유학 생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던 상태로 이해할 때 미주 한인 역사를 19세기까지 끌어 올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회장 주장의 근거는 시카고 박람회 당시 출품대원(出品大員)이었던 정경원( 鄭敬源, 1841-1898년)씨의 일기와 조선왕조실록(고종순종) 등이다.

이 기록들에 따르면 고종황제는 1893년 5월 1일 47개국이 참가한 시카고 콜롬비 아 박람회에 정씨를 비롯한 수행원 2명, 국악인 10명을 보냈다.

일행은 박람회 개회 식에 참가한 뒤 워싱턴으로 가서 클리블랜드 대통령을 예방하고 그곳에서 국악공연 을 펼쳤다.

특히 정경원은 박람회 기간 6개월 내내 박람회장으로 찾아온 박용규(朴鎔圭)ㆍ 서병규(徐丙珪) 씨 두 사람을 현지 고용인으로 채용했다.

박용규는 1년 전인 1892년 유학을 갔고 1894년 6월 19일부터 주워싱턴 조선공사관에 근무하다 1896년 4월 중순 귀국했으며, 서병규는 일본 게이오대학(당시 慶應義熟)에 유학갔다가 미국에 다시 건너갔다.

김 회장은 "시카고 박람회는 우리 민족이 참가한 최초의 국제 행사로, 당시 한 옥까지 지어 전시관을 꾸민 현장을 복원하는 것은 후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 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당시 한국전시관 건물 사진을 최근 입수했고, 전시관이 들어섰던 빌 딩의 평면 설계도를 찾아 현장(현재 잭슨공원)을 발굴했다.

김 회장은 또 지난해 말 한ㆍ미역사학회 함성택 박사, 듀폴대학 최진욱 교수, 노스이스턴대학 박규영 교수 등과 함께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한국전시관 자리에 팔각정과 연못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 재미동포 역사의 발상지'로 기념하는 뜻에서 150만 달러를 들여 한국전시관을 다시 세울 예정이다.

사업회는 또 당시 전시관 사진이나 전시 물품 사진 등을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을 돌며 순회 전시하는 행사에 우선 주력할 방침이다.

현재 시카고 박물관이 소장하 고 있는 380점의 한국전시관 유물 등을 임대한 상태다 사업회는 박람회 당시 미국 대통령 앞에서 10명의 악공들이 최초로 해외공연을 한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해 국립국악단을 초청, 전시관 자리에서 기념 연주회 를 가질 예정이며, 시카고 박물관을 비롯한 뉴욕 피바디 박물관과 워싱턴 스미소니 언 박물관에 각각 전시돼 있는 당시 전시 물품 도록의 발간도 추진하고 있다.

김 회장은 26일(현지시간) 오후 11시부터 12시까지 한미텔레비전의 `시카고 한 인역사 뿌리를 찾는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전시관 복원의 역사적 의미 등을 소개한다.

김 회장은 "박용규ㆍ서병규는 미주 이민사의 효시이며 해외이민사는 이들에 근 거해 다시 써야 한다"며 "한국전시관 복원에 한국 정부는 물론 기업, 독지가들의 지 원이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사진있음) ghwang@yna.co.kr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야후 뉴스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04062705450737201&LinkID=9&NewsSetID=470
엠파스 뉴스
http://news.empas.com/show.tsp/20040627n00569/?s=2914&e=3092
한미르 뉴스
http://news.hanmir.com/snews/newsview.php?dirnews=311573&year=2004
네이트닷컴 뉴스
http://news.nate.com/Service/natenews/ShellView.asp?OrgLinkID=49&LinkID=11&ArticleID=2004062705431456111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중앙일보 웹사이트에서 내 사진과 함께 기사가 나타났다. http://news.joins.com/society/200411/14/200411141740335501300036003610.html 더불어 김동섭 기자 블로그에도 기사가 그대로 소개되어 있었다. http://blog.joins.com/media/index.asp?uid=donkim8226

<중앙일보 본국지 11월 15일자 사회면 기사 전문>


         "미국 이민 출발점은 1893년 시카고 박람회"
    김성규 기념사업회장, "하와이 이민보다 10년 앞서" 주장


“재미교포 이민사는 출발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102명의 한인이 갤릭호를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밭에 도착한 1903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10년이 앞섭니다. 1893년 시카고 박람회로 시작되지요.”
미국 시카고에 본부를 둔 ‘1893 한국전시관 복원 기념사업회(odu@sbcglobal.net)’를 이끌고 있는 김성규 회장은 “이주 역사의 발굴 및 복원 역시 후손들이 해야 할 책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1989년 일리노이 주립대에서 역사학 석사과정을 밟던 중 1893년 시카고 세계박람회에 한국 대표가 참가했고, 한국전시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국내외 자료를 샅샅이 뒤져 고종 황제의 명으로 정경원(1841∼1898) 등 조선 관료 두명이 ‘전시(展示) 대표’로 열명의 악공과 함께 시카고로 왔고, 미국에서 유학하던 박용규ㆍ서병규가 현지 고용인으로 이들을 도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박람회 개장일(1893년 5월1일)에 열명의 악공이 당시 스티브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 앞에서 조선 국악을 연주했던 사실도 찾아냈다.  김 회장은 이를! ‘우리나라 전통 예술의 첫 해외공연’이라고 주장했다.    
“재미교포 이민사의 시작은 집단 이민 말고 유학와서 미국에 주저앉은 경우도 마땅히 포함돼야 합니다. 두명의 유학생이 6개월간 전시 안내 직원으로 일했고 그 뒤 미국에 정착했으므로 미국 이민사의 출발 시점을 1893년으로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12월 시카고 드폴대의 최진욱 교수ㆍ노스이스턴대의 박규영 교수 등과 함께 기념사업회를 발족했다. 기념사업회는 앞으로 한국전시관 자리에 팔각정과 연못을 조성하고 ‘재미교포 역사의 발상지’를 기념하는 뜻에서 150만달러를 들여 한국전시관을 복원할 계획이다. 최근 한국전시관 건물 사진을 입수했고, 전시관 건물의 평면 설계도도 찾아냈다.
“한국전시관을 복원해 당시 전시됐던 삿갓ㆍ버선ㆍ도자기ㆍ나막신 등 380여점의 유물을 상시 전시할 예정입니다. 한국의 국립국악단을 초청해 기념연주회도 열 계획입니다.”
김 회장은 이를 위해 한국 정부와 기업ㆍ독지가들이 많은 지원을 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시카고=김동섭 기자 donkim@joongang.co.kr 2004.11.14 17:40 입력 / 2004.11.15 08:26


 


     본국 평화문제연구소 월간 <통일한국>에서 현지 방문 특집 게재


 


월간 <통일한국> 1월호는 "1893 시카고 박람회 한국전시관 복원의 의미 - 한인 미주이민사 10년 앞당겨야 한다"는 제하의 특별 기사를 이 현 객원기자의 <특별취재>로 게재했다.

<통일한국>은 특히 한국전시관 복원기념사업회가 처음 조선일보 웹사이트내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명시하여 지금까지 기념사업회가 기사화된 내용과는 좀더 발족 배경에 대한 배경의미를 부여해주었다는데서 의미가 있다.


이미 지난해 12월 9일 본 게시판에
'Korean Quaterly와 <통일한국>'이라는 <1893> 시리글에서 소개한대로 당시에 시카고를 방문한 본국의 평화문제연구소 신영석 부이사장과 동 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 <통일한국> 손홍자 편집인 겸 상임이사가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의 안내로 한국전시관이 있던 현장을 둘러보고 간 일이 있다.

그때 본 기념사업회에 약속한대로 1월호 <통일한국>은 1893 한국전시관복원기념사업회 활동 내용과 본 기념사업회 발족문까지 네 페이지에 걸쳐 게재하고 해당 월간지와 평화통일연구소 책자를 보내왔다.


 


     잭슨공원자문위원단 한국전시관복원 만장일치로 통과시키다


오늘 3월 14일(월) 저녁 7시30분. 시카고 63번가의 Jackson Park Advisory Council에서 역사적인 결정이 이루어졌다. 복원기념사업회 회장으로서 프리젠테이션을 한 결과가 너무나 성공적으로 결과가 나왔다. 이번이 세번째인 카운슬 자문위원들에게 보여준 프리젠테이션이지만 이번 프리젠테이션은 특별했다. 한국전시관을 세울 전경을 소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기대 이상으로 잭슨공원자문위원단은 만장일치로 본 기념사업회의 제안을 수락하고 한국전시관을 잭슨공원내에 세울 것을 통과시켰다. 함께 간 기념사업회 관계자들 모두 나와 함께 너무나 예상외로 빨리 오늘 저녁 표결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것을 보고 감격해 했다.


 


* 아래는 보도용 사진


 



(1893년 발행 The Book of the Fair에 실린 한국전시관(Corea Exhibit)의 모습


 



 


1893년 시카고 박람회 당시의 상징 동상인 황금 여신상의 현재의 모습


 


 



 


복원될 한국전시관 기념 팔각정 조감도


 



 


기념사업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1893년 시카고 박람회에서 최초로 현지 고용인으로 일한 박용규로 추정되는 코리안 사진


 



 


2004년 4월 15일 강연장면


 



 


정경원 대표의 사진이 들어간 유일한 사료인 1893년 발행 The Book of Fair 책을 기념사업회에서 기증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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