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장원삼은 즐겁게 야구하는 선수였다 |
Q. 우리 히어로즈 장원삼 선수가 4월 23일 광주 KIA전에서 개인통산 첫 완봉승을 따냈습니다. 2005년 9월 8일 한화 송진우 이후 959일 만의 정규이닝 무사사구 완봉승이었는데요. 팀이 팀인지라 실력에 비해 조명을 덜 받는 듯 합니다. 장원삼 선수가 어떤 선수인지 소상히 알려주십시오. - 허민영-
A. 장원삼(25)을 좋아하시는 군요. 제가 알기로 그처럼 낙관적인 야구선수도 없을 것입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밤 캐치볼을 할 선수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만큼 야구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야구를 인생으로 받아들이는 선수도 흔치 않습니다.
4월 27일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우리 히어로즈와 LG전. 장원삼을 찾기 위해 우리 히어로즈 더그아웃으로 갔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본부석 주위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습니다. 장원삼이었습니다. 경기 중 본부석에 앉아 있는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이광환 감독이 다음 경기 선발투수는 더그아웃이 아니라 본부석에서 직접 경기를 보라고 했다." 더그아웃이 비좁아서 그런 걸까요. "아니다. 경기를 보면서 상대팀 분석을 하라고 했다. 지금 LG 타자들을 분석중이다." 장원삼은 그렇게 말하며 수첩에다 뭔가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예사롭지 않더군요.
"보겠는가?" 선뜻 내민 수첩에는 7개 구단 타자들의 특징과 장단점이 나름 상세히 적혀 있었습니다. ‘9회 무사사구 완봉승이 과연 운은 아니었다’는 생각을 할 무렵 장원삼이 "순전히 운이었다"하고 입을 열었습니다. 장원삼은 마치 같은 반 급우의 시험성적을 이야기하듯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날 KIA 선수들이 초반부터 뒤지고 있으니까 1, 2구에 배트가 나왔다. 나도 초반부터 초구 스트라이크 잡으려고 고마(고만)세리(인정사정없이)안으로 던진 게 주효했다"라며 완봉승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장원삼은 마산상고(마산 용마고 전신), 경성대를 졸업했습니다. 고향은 경남 창원입니다. 창원에서 중학교까지 다녔지요. 지금도 부모님은 창원에 사신다는군요. 그렇다면 경남 사내 장원삼이 우리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건 왜일까요. 순리대로라면 지금쯤 롯데 유니폼을 입어야 했을 텐데요.
"고교 졸업하고 프로에 왔으면 지금쯤 맨 끄팅이(끝)에 있을 거다." 그렇다면 프로 입단을 스스로 고사했다는 뜻일까요. "그게 아니고 고 3졸업반 때 현대(우리 히어로즈 전신)가 2차 11번으로 날 지명했다." 맞습니다. 2002년 신인 2차 드래프트에서 현대는 장원삼을 11번(전체 89번)으로 지명했습니다. 당시는 지명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었지요.
사실 장원삼은 고교 때 유망주는 아니었습니다. 제구는 나쁘지 않았지만 구속이 많이 떨어지는 그저 그런 왼손투수였습니다. 팀 전력이 약했던 탓도 있었지요. 이대호(롯데)가 적을 두고 있던 경남고가 "수준 떨어진다"며 마산상고와 연습경기도 같이 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장원삼은 그해 경성대로 진학한 뒤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대개 저순번 지명자들은 대학을 프로입문을 위한 패자부활전으로 생각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장원삼은 예외였지요.
"대학 1, 2학년 때는 거의 공을 못 던졌다. 선배들이 다 던지고 전 선배들 뒤치다꺼리만 했다. 3학년으로 올라갈 즈음 선배들이 졸업하면서 동기생 김기표(LG)와 많이 던지기 시작했다. 3, 4학년 때는 한해 100이닝 이상씩 던졌으니까." 장원삼의 설명입니다.
장원삼은 투수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대학 2년 겨울방학을 꼽습니다. 그때부터 힘이 붙기 시작했다는 군요. "일단 몸에서 힘이 나니까 공 스피드도 엄청 좋아졌다. " 그러면서 당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쪼메(조금) 살벌했다."
시속 140km 이상의 직구을 뿌리기 시작한 장원삼은 3학년이던 2004년 대학리그에서 10승을 거두고 이듬해는 전국대학선수권대회에서 최우수선수, 추계리그에서는 우수투수상을 받으며 성공가도를 달립니다. 4년 전 2차 11번의 무명선수 장원삼은 이제 현대 입단을 앞두고 거액을 만질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더 안준다고 하더라. 2억5천만 원 이상은 죽었다 깨도 몬(못)준다고 했다. 뭐 안준다니까 우야(어떻하)겠나." 결국 계약금 2억5천만 원을 받은 장원삼은 2006년 현대에 입단했습니다. 당시 장원삼을 바라보는 코칭스태프는 반신반의했습니다. 직구와 슬라이더는 괜찮았지만 단조로운 투구패턴과 경험이 문제였습니다. 다행스러운 건 현대에 마땅한 선발투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김재박(LG) 전 감독이 출전기회를 많이 줬다. 덕분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다." 2006년 데뷔 첫해 장원삼은 12승10패 평균자책 2.85를 기록했습니다. 183⅓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을 142개나 잡았지요. 그러나 신인왕은 류현진(한화)의 몫이었습니다.
장원삼은 낙담 대신 다음시즌을 준비했다는군요. 지난해 4월 성적은 선동열의 재림이었습니다. 5경기에 선발로 나와 32⅓을 던지며 평균자책은 0.28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고작 1승밖에 따내지 못했습니다. 5월에도 그런대로 잘 던졌지만 2승밖에 챙기지 못하더니 6, 7월에는 월간 평균자책이 각각 8.68, 4.64로 치솟으며 결국 9승10패 평균자책 3.63를 기록하고 맙니다.
장원삼은 여름에 약했던 이유를 포수 김동수의 말을 빌려 설명하더군요. "(김)동수 선배가 그랬다. ‘구속 차이는 없는데 시즌 초반에 비해 여름이면 공끝이 죽는다’고. 나도 구속은 똑같은데 마지막에 손끝으로 공을 챌 때 힘이 좀 떨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지난해 팀 실책 1위(96개)였던 현대 수비진도 문제였습니다. "이건 쉬운 땅볼도 놓치고. 그럴 때면 이건 아이다(아니다)싶은 생각이 들면서 맥이 빠졌다." 그러나 수비진을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군요. "내가 못 던졌다고 야수들이 날 원망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같은 이치다."
장원삼은 7개 구단 타자들의 특징을 수첩에 적고 있었다. 별 것 아닌듯하지만 전력분석팀에게 조언을 구하지 않거나 스스로 체크하지도 않은 채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들도 많다 |
올시즌 장원삼은 투구 시 팔 스윙이 더 간결해지고 짧아졌습니다. 그 만큼 타자들은 배팅 타이밍을 맞추기 힘듭니다. 그러나 정명원 투수코치는 "특별히 변한 건 없다"고 잘라 말하더군요. 대신 "집중력이 높아졌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해는 위기 때 번번이 무너졌지만 올시즌은 다르다고 하는군요.
사실입니다. 장원삼의 집중력은 높아졌습니다. 단적인 변화가 초구 스트라이크입니다. 장원삼은 타석에 LG 이대형이 들어서자 손가락을 가리키며 "초구를 잘 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한다"며 "발 빠른 타자들은 수 싸움보다는 ‘칠 테면 치라’는 식으로 정면승부를 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지난해 볼넷을 너무 많이 내줬다. 올시즌은 볼넷을 줄 바에는 투구수를 줄이는 차원에서 빨리 승부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어차피 타율 3할은 10개 중에서 3개만 안타라는 뜻이 아니냐"라는 게 장원삼의 계산입니다. 지난해 장원삼의 초구 스트라이크율은 57.9%로 리그평균 57%보다 다소 높았습니다. 이닝당 투구수는 16.6개로 리그평균과 동일했습니다. 그런데도 9이닝당 볼넷은 4.00개로 리그평균 3.61개보다 높았습니다.
올시즌은 어떨까요? 이닝당 투구수는 15.44개, 9이닝당 볼넷수는 3.09개로 확실히 줄었습니다. 그러나 초구 스트라이크율은 지난해보다 오히려 49.6%로 떨어졌습니다. 어찌된 일일까요.
정작 장원삼이 변한 건 타자 공략법을 스스로 터득했다는 것입니다. "LG의 경우 젊은 타자들이 많다. 젊으면 젊을수록 빠른 공은 잘 치지만 변화구는 헛스윙을 많이 한다. 반대로 나이든 타자들은 빠른 공에는 약하지만 유인구에 속지 않는다."
평범한 진리지만 실전에선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그 만한 구종을 갖춰야 합니다. 장원삼은 팔의 각도와 세기를 이용해 빠르게 횡으로 휘는 슬라이더와 낙차 크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집니다. 간간히 투심패스트볼과 서클체인지업도 던지지요.
"투심패스트볼은 한 경기에 2, 3개 던진다. 서클체인지업은 아직 손에 익지 않아 자주 던지지 못하지만 이것만 완성되면." 장원삼의 소원대로 더 좋은 투수가 되겠지요.
올시즌 장원삼이 좋은 성적을 내려면 몇 가지 문제를 넘어야 합니다. 먼저 포수와의 호흡입니다. 우리 히어로즈의 주전포수는 강귀태입니다. 투수들은 하나같이 강귀태의 능력을 높이 사지만 "김동수보다는 덜 편안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포수 사인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원삼도 "(김)동수형한테는 이것저것 공을 던져도 편안하지만 아직 (강)귀태형은 조심스럽다"고 말합니다.
장원삼 본인은 "직구구속을 끌어올려야 한다"며 걱정을 하더군요. "지난해 초반은 시속 146km까지 나왔다. 그런데 올시즌은 아직 시속 143km가 최고구속이다." 장원삼의 설명입니다. 그러나 직구구속이 줄며 제구가 잡힌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그렇다." 장원삼은 수긍을 하면서도 정작 직구구속을 올려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솔직히 투수라는 보직이 자기 공이 빨라야 재미를 느낀다. 물론 공이 느려도 안타 안 맞고 점수 안주면 좋지만 또 그게 아니다." 실제로 투수들은 공을 던진 뒤 등을 돌려 전광판에 찍힌 자신의 구속을 바라보곤 합니다. 구속을 통해 그날 컨디션을 체크하는 목적도 있지만 보디빌더가 거울에 자신의 몸을 비추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우리 히어로즈의 마무리 부재도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잠시 마무리를 맡았던 김성현은 "구속은 높지만 공이 가볍고 공끝이 떨어진다"는 게 김동수의 평가입니다. 황두성이 가장 안정적인 마무리감이긴 합니다. 장원삼은 "국내 투수 가운데 직구만 치면 국내 1위일 만큼 살벌하다"고 황두성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선발투수로 지금 잘 던지고 있지요.
가장 큰 문제는 부상입니다. 장원삼은 2006년 프로 데뷔 이후 도하아시아경기대회와 베이징올림픽 야구 예선 등으로 인해 한 번도 휴식을 취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때도 많이 던진 편이지요. 훈련을 많이 시킨다고 선수들이 ‘실미도 코치’로 부르는 정명원 투수코치는 "다른 투수들이라면 잔병치레할 때가 됐다"며 "특별히 관리하고 있지만 다소 불안하다"고 속내를 털어놨습니다.
지난해 장원삼은 팔꿈치에 고통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MRI 촬영결과 "일반인의 팔꿈치보다 깨끗하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참고로 장원삼은 아직 차가 없습니다. 운전면허증이 없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여기저기 출전하느라 운전면허 딸 시간이 없었다." 장원삼의 하소연입니다. 그러나 지난 시즌이 끝나고 1달가량 놀지 않았나. "음, 친구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느라…." 말끝을 또 다시 흐린 장원삼은 이번에도 난데없이 윤석민(KIA)이야기를 꺼내며 "불쌍해 죽겠다"고 말했습니다.
불쌍하긴 장원삼도 마찬가지입니다. 25살 청년 장원삼은 현재 목동구장 주변 아파트에서 장채근, 김응국 코치 등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째서 숙소에서 생활하는지 물었습니다. "돈이 없다." 대답이 짧더군요. 올시즌 장원삼의 연봉은 8천만 원입니다. 게다가 계약금으로 2억5천만 원을 받았습니다. 돈이 없을까요?
"벌어둔 게 없다. 계약금도 아직 절반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못 받았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서 꼭 계약금 잔액을 챙겨준다고 했는데." 제 마음이 다 아파오더군요. 하지만 장원삼은 씩씩했습니다. "그 돈 받으면 완전 공돈 아닌가." 그의 묘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장원삼과 한참 이야기를 나눌 즈음. LG 응원단의 함성소리가 잠실구장의 대기를 흔들어놨습니다. 이에 질세라 우리 히어로즈 응원단도 함성을 질렀습니다. LG팬들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우리 히어로즈팬들의 열성적인 응원이 인상적이더군요. 그때 장원삼이 혼잣말을 했습니다. "우리팬들 좋아. 아주 좋아."
장원삼은 수원을 떠나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한 걸 기뻐하는 눈치였습니다. "수원구장에서 나와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숙소였다. 반바지 입고 슬리퍼를 끌고 다녀도 어느 누구도 우릴 알아보지 못했다. 롯데 선수들은 사람들이 하도 알아봐서 자기 사생활이 없다고 하던데 우리는 절대 그런 일이 없었다."
서울에서는 알아보는 이가 늘고 팬도 증가했을까요. 장원삼은 대뜸 "롯데랑 경기를 하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목동구장에서 롯데랑 3연전할 때 난리도 아니었다. 롯데팬들이 우리편 응원단까지 넘어와서 소릴 질렀다." 롯데팬에 대한 서운함이 남은 까닭일까요.
"서운함? 아니다. 그날 롯데 응원하는 것만 지켜봤다. 다다음주 사직구장에 가는데 그날만 기다리고 있다." 덧붙여 장원삼은 "가르시아송을 들어봤느냐"고 물었습니다. 고개를 흔들자 "살벌하다"는 말을 4번이나 하며 "새로운 연고지 서울에서 보다 많은 팬과 함께 야구를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8회초 우리 히어로즈가 LG에 7-5로 앞서고 있었습니다. 장원삼은 그라운드를 향해 "자, 가자 2연승"하며 기분 좋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김수경과 송신영 등 동료투수들의 구위를 자랑삼아 이야기하더군요. "더 이상 우리는 지난해처럼 쉽게 무너지는 팀이 아니다"라며 목소리에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가볍게 악수를 나눈 뒤 헤어졌습니다. 그런데 8회말 LG가 3점을 내며 역전에 성공하더군요.
우리 히어로즈 선발투수 장원삼은 국내 최고의 왼손 선발투수를 꿈꾸고 있다 |
큰 소릴 치던 장원삼을 찾았습니다. 본부석에서 어느 새인가 사라졌더군요. 4월 29일 대구 삼성전에서 우리는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겁니다.
재능을 타고난 것과 재능을 끊임없이 발전시키는 것은 별개입니다. 장원삼은 전자보다 후자에 가까운 선수입니다. 그는 멀지 않아 국내 최고의 왼손 선발투수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그토록 꿈꾸던 만원 홈 관중 앞에서 힘차게 공을 던질 테지요.
목동구장 주변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사내가 있다면 사인지를 준비하십시오. 수줍게 웃으며 정성스레 사인을 해줄 겁니다. 더 이상 그런 복장으로 다니지도 않을 테지요. 그것이 그가 꿈꾸는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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