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홈 |  카페 전체보기 |  기자카페 |  블로그  블로그 개설  | 
훼드라의 소설극장
cafe.chosun.com/whaedra
  |  매니저 : 최현순  |  멤버 : 9  |  개설일 : 2005/04/09
'훼드라의 소설극장'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되세요!
공지사항
단편소설
해운대 연가 (완결)
새엄마의 길 (완결)
천사의 키스 (중단)
소녀시대 (팬픽)
기타
카페앨범
일정관리
Today  0 Total  5007
 소녀시대 (팬픽)
로그인 후 사용하십시오. recom
유리 (4)
  2009/09/01 06:34
최현순      조회 36  추천 0

 

 밤늦은 시간이 되어 태원은 집으로 돌아갔고 덕수는 아들 찬일과 함께 자신의 방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아버지... ”

 “ 왜 그러느냐 찬일아 ? ”

 “ 그 김태원이란 사람 말입니다. ”

 “ 그 사람이 왜 ? ”

 “ 너무 가까이 하시는것 아닙니까 ? 요즘들어. ”

 

 찬일은 아버지 덕수가 사뭇 우려되는듯 말하고 있었다. 덕수의 말이 이어진다.

 

 “ 넌 여전히 그 사람이 못마땅한가 보구나. ”

 “ 그 사람과 가까이 하시는게 아버님의 여생에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시냔 말입

  니다. ”

 “ 내가 김태원 그 사람을 처음 알게된게 90년대 초반이니 벌써 십수년이 흘렀

  지. ”

 

 지난날을 회상이라도 하는듯 덕수의 목소리는 감회에 잠긴다.

 

 “ 3.1절날 있었던 반일집회에서였네만은, 우연히 그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연

  단에 설 기회가 있었어. 그때 그의 쩌렁쩌렁한 음성...그리고 우리 사회의 보수

  , 진보진영을 모두 질타하는 그의 주장과 목소리는 내 마음을 공명시키는데 충

  분했지. ”

 “ 제가 봤을때는 그 사람은 그저... ”

 “ ...... ”

 “ 우리나라 정치와 국제정세 같은데 관심이 좀 많은 그저그런 사람중 하나같

  아 보입니다. 어디 우리나라에 괴짜가 한둘이랍니까 ? 전 세계에서 가장 애

  국자 많을 나라가 우리나라일것이란 말도 있는데... ”

 “ 괴짜라구 ? ”

 “ 저도 인터넷을 하기 때문에...그 사람에 대한 그곳에서의 평판은 대충 들어

  알고 있습니다. ”

 “ ...... ”

 “ 정치,시사 사이트에서 수년전부터 우리나라 주요 정치현안에 대해 이런저런

  글도 쓰고 그걸 오만 사이트에 다 올리고 그랬던 모양인데... ”

 

 찬일은 말을 잠시 멈추고 물을 한모금 마신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 하지만 워낙 그 사람 성격이 괴짜고 괄괄하다 보니까...대체로 평판이 좋지

  않던것 같더라구요. 그리고 이런저런 의견충도롤 싸움이 있었던 네티즌도 더

  러 있구요. ”

 “ 넌 주로 그 사람 안 좋은면만 보게 되었나보구나. ”

 “ 평판이 그렇다니까요. ”

 

 덕수는 별다른 대꾸없이 잠시 허공을 응시한다. 혼자 무슨 생각에 잠기는듯 하다.

 

 “ 여하튼 난...좌우를 뛰어넘는 새로운 민족주의를 이 땅에서 구현해보고 싶다는

  그 사람의 주장을 흥미를 갖고 지켜보고 있어. 또 우리나라 정치,시사 현안에 대

  한 그 사람의 주장에도 동의하는 부분이 어느정도 있고말이야. ”

 “ 아버지... ”

 “ 넌 여전히 김태원이란 사람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나보지만...아무튼 우리

  사회에 그런 사람이 하나쯤 있는것도 의미있는 일이라고봐. 뭐 정말 그 친구가

  주장하는 좌우를 뛰어넘는...무슨 민족주의가 이 땅에서 실현될수 있을지 그건 미

  지수지만 말야. ”

 “ ...... ”

 “ 나 또한 우리사회의 민족주의가 많이 왜곡되어 있다고 보고있는 사람중 하나거

  든. 오늘 네가 만난 그 권유리양도...그 무슨 청우일심회란 단체에 있다가 탈출하

  기도 했지만...그런 소위 민족종교니 뭐니 하는 사람들...실제 만나보면 시대착오

  적인 국수주의자들이 참 많아. ”

 

 아무튼 박덕수도 정치를 하던 사람인데 특정 종교세력에 대한 입장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밝혀도 되는것일까. 하긴 덕수는 이제 정계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가니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하고싶은 이야기를 솔직히 털어놓을수 있는 그런 자유로운 처지이긴 하지만. 더욱이 지금 이 자리는 그가 가장 신뢰하는 막내아들 찬일과 단둘이 있는 자리 아닌가.

 

 “ 그...환단고기인가 하는 역사서류도...실제 정통사학계에선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보고 있는거거든...물론 여전히 많은 논란이 되고 있기도 하지만...환단고기류 사

  서들이 오히려 우리 사회의 국수주의만 더 부추기고 있는것도 사실이야. 삼국시

  대 우리땅이 중국에 있었다느니...심지어 고려,조선까지 무슨 대륙조선설 어쩌구

  역사에 대한 상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이

  야기란걸 금방 알 수 있는데...하지만 실제 그런 사람들의 주장에 넘어가는 사람

  도 꽤 있거든. 그것도 명색이 우리사회에서 양식을 갖추고 있고 어느정도 사회적

  지위도 갖추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말이야. ”

 “ 그래서...김태원씨의 민족주의를 지지한다고 하신다는건가요 ? ”

 “ 적극적으로 그 사람 일을 돕는다는가 하는것까진 현실적으로 어려워도... ”

 “ ...... ”

 “ 그 사람과 어느정도 동지의식 정도를 갖고 교류하는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겠

  지. ”

 

 찬일은 말없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찬일로선 아무튼 여전히 김태원과 교류하는 아버지의 행보가 마땅치 않은 모양이다.

 

 “ 참, 그리고... ”

 “ 또 무슨일이냐 ? ”

 “ 그...권유리양은 이제 어떻게 하실건가요 ? 마냥 언제까지 이렇게 아버지의 별장

  에 머무르게 할수도 없는 일이고. ”

 “ 글쎄...어떡하면 좋을까... ”

 

 권유리의 처리 문제는 덕수로서도 여전히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 난감한 문제다. 더욱이 비록 박덕수의 나이 70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그가 혼자 사는 별장에 젊은 여자가 하나 들어와 오래 있는것이 주위의 눈에 뜨이기라도 하면. 불필요한 오해를 살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 않는가. 덕수는 잠시 지그시 눈을 감아본다.

 

 “ 여하튼...그 청우일심회란 단체를 탈출해...지금은 오갈데 없는 처지니...게다가 부

  모님도 이혼을 한지 오래된 상태라니까...그 사람들한테 연락하는것도 어려운 일

  일테고...지금으로선 별다른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구나. ”

 “ 제가 유리양과 내일 다시한번 차근차근 이야기라도 해 볼까요 ? ”

 “ 네가 ? 네가 유리양과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

 “ 그냥...그렇다고 제가 오갈데없는 어린 소녀를 야멸차게 내친다던가 그럴 사람

  은 아니지 않습니까. 다만 그저...인생상담이라도 받아들이듯 조용히 이야기를 나

  누면서 유리양 생각을 들어보겠다는 거지요. ”

 “ 그야 뭐 어렵지 않은 일이니...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그렇게 하려무나. ”

 “ 네, 아버지. ”

 

 


 다음날 오전. 찬일은 유리의 방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 간밤엔 잘 잤나요 ? ”

 “ 네. ”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리. 얼굴은 많이 밝아져있다.

 

 “ 뭐 불편하거나...그런것은 없죠. ”

 “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간밤엔 참 편안히 잘 잤어요. ”

 “ 그래요, 다행이네요. ”

 

 유리가 편히 잘 잤다는 말에 찬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어보인다. 무엇보다 유리가 별 탈없이 잘 있다는 점이 그도 마음이 놓이나보다.

 

 “ 그런데...그 청우일심회란 종교단체에서 살다가 탈출한것이라고 했었죠 ? ”

 “ 네... ”

 “ 부모님은 유리양이 어릴때 이혼을 하셨구요 ? ”

 “ 네, 세 살때 일이에요. 그 뒤로 쭉 외할머니 댁에서 살게된거고... ”

 “ 그...외할머니가 청우일심회란 종교를 믿게되어서...그래서 거기 바쳐진거라 했

  었던가요 ? ”

 

 중학교때 성폭행을 당한 아픈 과거가 있기도 한 유리. 그 일로 유리의 외할머니는 기함을 했고, 이 아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을 하다 청우일심회에 데리고 갔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전생의 업연을 풀어야 한다기에 영가천도제까지 지냈었는데. 그곳관계자들은 그것만으론 부족하다며 유리를 청우일심회에 바치라고 했다. 그래서 24선녀중 한사람으로 발탁되어 영월의 총무원에서 기거하게 되었다는 유리.

 

 “ 그렇다면 지금으로선 외할머니 댁으로 돌아갈수도 없는 일이고...참 난감하겠네

  요. ”

 “ 네... ”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의 얼굴이 다시 우울해진다. 오갈데 없는 처지가 되어있는 자신의 현실이 새삼 느껴지니 다시 걱정이 되는것이다.

 

 “ 허허...그것 참... ”

 

 찬일의 생각에도 딱히 유리의 처리문제에 대해선 답이 안 나오는듯 탄식만 내뱉는다. 그리고 잠시 유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 저어...선생님... ”

 

 유리가 찬일을 불러본다. 그러고보니 유리 입장에선 지금까지 찬일을 어떻게 불러야할지 호칭이 참 애매했다. 박덕수의 아들이라곤 하는데, 덕수의 경우는 처음엔 아저씨라 불렀고 그가 전직 국회의원이란 사실을 알고선 ‘ 의원님 ’이라 호칭하게 되었다. 헌데 찬일의 경우는 그럼 뭐라고 부르는게 좋을까. 찬일의 나이 올해 서른살이라 했으니 유리보담은 열한살이 위다. 그래서 ‘ 아저씨 ’란 호칭은 웬지 무례하게 느껴진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에서였을까. 유리는 찬일을 ‘ 선생님 ’이라 부르게 되었다.

 

 “ 하하...이런...선생님이라고까지 할 정도야...옛날같으면 한 열 살정도 터울지는

  남매나 형제도 흔했을텐데...그냥 그러지 말고 오빠 정도로 불러요. 저도 저희 큰

  누나와는 열 살차이인데... ”

 “ 네...오...빠... ”

 

 오빠라고 불러도 된다는 찬일의 말에 유리는 그 단어를 한번 내뱉어본다. 하지만 아직은 어색해서인지 그 호칭이 쉽게 나오지는 않는다. 유리의 말이 이어진다.

 

 “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될지 모르겠어요. ”

 “ 부탁 ? 무슨 부탁을 하고 싶은데요 ? ”

 “ 실은...사실 그래서 저도 제 거취문제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어요. 언제까지 이

  렇게 제가 의원님 댁에서 마냥 신세만 질수도 없는 일이고... ”

 “ ...... ”

 “ 실은 선생님...아니, 저 오빠...아무튼 그래서...죄송하지만 저희 부모님 소식을

  좀 수소문해주실순 없을까요 ? ”

 “ 유리양 부모님 소식을요 ? ”

 

 찬일은 다소 놀란다. 어차피 유리의 문제를 해결을 봐야하는 일이니 이야기를 하러 방에 들어온것이긴 하지만. 유리의 부탁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부탁이 아닌가. 대체 찬일이 지금 무슨수로 그녀의 부모님 소식을 알아볼수 있단 말인가. 하긴 유리의 입장에선 10년째 고향 별장에 은거하고 있다는 덕수보담은 그래도 서울에 살며 직장생활을 한다는 찬일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것이 쉬울것 같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이 들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무엇보다 지금 유리로선 소통할수 있는 사람이 현재 별장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는 박덕수. 그리고 그 아들 찬일 두 사람 외엔 누가 더 있겠는가. 굳이 따지자면 어제 덕수의 집에 들렀던 좌우를 뛰어넘는 민족주의자란 김태원이란 사람 정도가 있을뿐.

 

 “ 부모님의 성함은...기억하고 있나요 ? ”

 “ 네. ”

 

 일단 유리의 부탁을 들어는 줘봐야 겠다는 판단을 했음인지 찬일은 그렇게 묻는다. 다행히 유리는 부모님의 성함과 나이까지는 기억하고 있었다.

 

 “ 아버지는 재혼후에 새 여자분과 서울로 올라가 살림을 차리셨다는 이야기를 들

  었고요. 어머니도 새로운 남자분을 만나신후...어머닌 미국에 계실거라고 외할머니

  께서 말씀해 주셨었어요. ”

 “ 그랬군요. ”

 

 고개를 끄덕이는 찬일.

 

 “ 사실...이름을 안다고 해도 바로 찾을수 있는것은 아니에요. 무엇보다 벌써 십수

  년전의 일이 아닌가. 그러니 유리양 부모님이 꼭 서울이나 미국에 산다는 보장이

  있는것도 아니고... ”

 “ ...... ”

 “ 게다가...유리양 부모님이 각기 재가하신건 십수년전의 일인데 지금 유리양이 나

  타난다면 더 부담스러워 하실수도 있지 않겠어요 ? ”

 “ 저도 그걸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말씀을 드리지 못했던거고요. ”

 “ 어디 부모님 이외에 유리양이 의탁하거나 연락을 취해볼만한 그런 사람은 없어

  요 ? 친구나 친척...아니면 다른 지인이라도... ”

 “ 없어요. ”

 

 유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 말씀드렸잖아요. 학창시절엔 그렇게...외할머니 따라 청우일심회에서 천일기선

  드리느라...그러면서 보낸 세월인데 제게 무슨 학교 친구가 있을수 있겠어요. 아

  는 사람이라곤 그저 청우일심회에 관계된 그런 사람들이 전분데... ”

 “ 그렇군요... ”

 “ 게다가 학교에서도...중학교때 그런 일이 있은후 자연스럽게 제 성격이 폐쇄적

  으로 되어갔어요...그래서 친구들하고도 어울리지 못하고...늘 저 혼자 외톨이 신

  세로 지냈었지요. ”

 “ 그랬군요. ”

 

 찬일은 말없이 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알면 알수록 참으로 딱하기만 한 유리의 처지다.

 

 “ 아무튼...제가 서울에 올라가면...유리양 부모님 소식은 한번 수소문해 보기로 할

  께요. 어쨌든 이름하고 나이 정도...그리고 서울이나 미국에 사신다는 것 정도의

  단서는 있으니...찾는 방법이 그리 난망하지만은 않을거에요. ”

 “ 고마워요 선생님. ”

 “ 오빠라고 부르라니까... ”

 

 선생님이란 호칭은 자신이 나이들어 보이는 느낌 때문인지 찬일은 그건 싫은듯 했다. 오빠라고 부르라는 말에 유리는 다소 부끄러운듯 고개를 약간 숙인다.

 

 “ 참...그리고...오...빠... ”

 “ 왜요 ? 또 무슨 다른 하고픈 이야기가 있나요 ? ”

 “ 그...김태원 선생님이란 분 말이에요 ? ”

 “ 김태원...어제 왔던 그 손님 말씀이신가요 ? ”

 “ 네. ”

 “ 그분에 대해 뭐 궁금한게 있나요 ? ”

 “ 좌우를 뛰어넘는 무슨 민족주의 하신다면서요 ? 그리고 환빠와 증산빠는 배격하

  고... ”

 “ 아, 그거요 ? 하하하... ”

 

 찬일은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 아버님이 정치하시면서 워낙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보시다보니...그때 알게된

  사람중 한 사람일 뿐이에요. 유리양은 너무 괘념치 않으셔도 돼요. ”

 “ 어제 잠깐 이야길 나누어보긴 했는데...궁금해졌어요...대체 어떤분일지... ”

 “ 그냥 좀 괴짜같은 사람이에요. ”

 “ 인터넷에서 무슨 웹진도 하신다면서요 ? ”

 “ 요즘 인터넷에 그런 웹진이 얼마나 많은데요 ? 마치 그 옛날 무슨 춘추전국이나

  제자백가 같은 시대처럼...웹진이라 해봤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군소규모 웹진

  이고...크게 신경쓰시지 않으셔도 돼요. ”

 

 김태원에 대해 평가절하하듯 잘라말하는 찬일. 하지만 유리는 여전히 그 김태원이란 남자에 대한 호기심이 가시지 않는듯 두어가지를 더 물어본다. 하지만 찬일은 여전히 그 사람에 대해선 크게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찬일은 오후에 서울로 돌아갔도 유리는 덕수와 함께 잠시 별장을 나와 산책을 하고 있다. 산책을 하던중 덕수가 유리에게 말을 건넨다.

 

 “ 유리양... ”

 “ 네, 의원님. ”

 

 김태원처럼 유리도 이제 덕수에게 꼬박꼬박 ‘ 의원님 ’이라 호칭한다.

 

 “ 이천도 이젠 많이 변했어...내가 젊은 시절때까지만 해도 여긴 그냥 시골이었

  었는데말야... ”

 “ ...... ”

 “ 하긴 뭐 요즘은 시골이라도 웬만한 편의시설이나 문화시설은 다 들어와있더군

  . 그래서 도대체 도시인지 시골인지 통 분간이 안가서말이야. ”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어떤 아쉬움이나 야속함 같은것이 있는것인지 덕수가 탄식처럼 늘어놓는다.

 

 “ 그래도 여긴 읍내에서 좀 떨어진 곳이라 한적하긴 하다만...읍내만 다가보면 통

  시끄러워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 밤이되면 불야성을 이루는곳도 있고말이지. ”

 “ ...... ”

 “ 하지만 유리양도 도회지에서 자라났으니 시골보담은 도시가 더 체질에 맞겠구

  먼. ”

 

 유리는 별다른 대꾸가 없다. 변해버린 고향에 대한 덕수의 아쉬움. 정계를 떠나 조용히 고향 별장에서 한적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은게 아무래도 그의 마지막 남은 소망인듯 하지만. 그러나 고향이라고 해서 옛날에 생각하는 시골 고향 같지만은 않으니 그에대한 아쉬움이 남아있나보다. 유리로선 별다른 대꾸할말이 없어서인지 묵묵히 덕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는것이다.

 

 “ 유리양... ”

 “ 네, 의원님... ”

 “ 아무튼 나도 30년 넘게 정계에 몸담아왔던 사람이긴 하지만...그랬던 한 사람으

  로써 우리나라 정치가 부패하고 타락한것에 대한 일말의 책임을 느끼기도 해. ”

 “ ...... ”

 “ 그래도 난 어쨌든...나름대로의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자 살아왔다고 자위하긴

  하지만...아무래도 많이 역부족이었지. ”

 

 덕수가 정계에 몸담고 있던 시절 어떤 활동을 했었는지는 그간 대충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87년엔 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삭발까지 감행하기도 했고, 88년엔 청문회 스타가 되면서 차세대 후보로 부상하기까지 했다던 그. 그 여세를 몰아 92년 대선과 95년 서울시장 선거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거기까지가 그의 최전성기였다. 지금은 이제 초야에 묻힌지 10년인지라. 유리같은 10대 소녀는 박덕수란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기까지 하지 않는가.

 

 “ 우리나라 정치는 내가봐도...부패한 보수진영이나 무능한 진보진영이나 모두 문

  제가 있어. 게다가 민주화 운동가 출신이란 대통령들도 이전의 군사정권과 다를

  바 없는 제왕적 통치를 하기도 했었고... ”

 “ ...... ”

 “ 민주화 정부가 하도 죽을 쓰다보니 지금와서 새삼 중년층 이상은 군사정권에 대

  한 그리움이나 향수같은것을 느끼기도 하지만...어쨌든 군사정권은 우리나라 역사

  에서 불행한 과거였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가 없어. ”

 

 한여름 오후이긴 하지만 싱그러운 풀내음이 나는 숲길을 거닐고 있어 그리 크게 더위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차도가 나온다.

 

 “ 유리양... ”

 “ 네, 의원님. ”

 “ 내 비록 외람되나마 유리양같은 자라나는 젊은 세대들에게 한가지 이야기 하고

  픈 것은 있어. 그것은 우리나라 좌우 이념갈등 구도는 결국 자본주의 : 공산주의

  라는 구 시대의 이념대결에서 파생된 결과물에 지나지 않은거거든. ”

 “ ...... ”

 “ 그러니 유리양같은 젊은 세대들은 좀 그런 좌우 이념갈등 구도에서 벗어나 새로

  운 시대에 걸맞는 가치관과 철학을 연구하는 그런 후세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가지고 있단 말이지. ”

 “ ...... ”

 “ 그런 의미에서 어쨌든 그 김태원 선생의 생각과 동의하는 부분도 있어. 그래서

  내가 그 양반과 지난 십수년 교분을 해온것이기도 하지만 말야. ”

 

 덕수의 아들 찬일은 김태원에 대해 괴짜 같다며 못마땅한 반응을 보였긴 하지만, 덕수는 확실히 그 김태원이란 사람에 대해 호의를 품고 있나보다. 하긴 유리도 어제 태원이란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보고 그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도 했다. 환단고기류의 국수주의자들이나 증산도류의 종교세력이 아닌 제대로 된 정치철학으로서의 민족주의를 한번 구현해보고 싶다는 김태원이란 사람. 처음엔 민족신문 어쩌구 하는 이야길 들으며 경계심을 갖기도 했지만 그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들어보고는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 유리양... ”

 “ 네, 의원님. ”

 “ 그...찬일이가 아무튼 서울에 올라가거든 유리양 부모님 소식을 수소문해보겠

  다고 했지만...어쨌든 십수년이 지난 일이니 확신할수는 없는 것 아닌가. ”

 “ 저도...그 점을 우려하고 있어요. ”

 “ 무엇보다 이미 10여년전에 이혼하고 유리양과는 일체 연락을 끊었던 그분들

  인데 지금와서 새삼 유리양이 그분들 앞에 나타나면 당황할수도 있는거고 말

  일세. ”

 

 유리는 새삼 가숨속에서 어떤 북받치는 설움 같은게 인다. 천신만고 끝에 청우일심회를 탈출하긴 했지만, 이제 오갈데 없는 신세가 된 자신. 무엇보다도 자신을 받아주고 반겨줄 부모님 하나 없는 신세가 새삼 서러워진 것이다.

 

 “ 울지말아요 유리양 그렇다고. 기운을 내야지. ”

 

 눈물을 보이는 유리. 그런 유리의 눈물을 덕수가 닦아준다. 그리고 이야기를 계속한다.

 

 “ 유리양...내 그래서 하는 말이네만은... ”

 “ ??? ”

 “ 일단 유리양 부모님 소식을 아는게 우선이겠지만...만약 그 일이 여의치 않게되

  었을경우에 말일세. ”

 

 덕수는 유리의 얼굴을 한번 물끄러미 바라본다.

 

 “ 그...김태원 선생의 민족신문이란걸 좀 도와주는건 어떻겠나 ? ”

 “ 제가요 ? ”

 

 유리의 눈이 다소 휘둥그래진다. 김태원이란 사람과 그가 인터넷에서 운영한다는 민족신문에 대해 어느정도 관심이 생긴 그녀였지만, 덕수가 이런 제안까지 하는건 뜻밖이었던 것이다.

 

 “ 내가 직접 나서서 그 사람 일을 돕는다던가 하는건 못 하지만...그 사람 주장에

  어느정도 동의하고 지지하는 입장에서 늘 안타깝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하지

  만 그 사람을 내가 직접 나서서 돕지는 못해. 행여 내가 이제와 새삼 정치를

  재개하려한다던가 하는 그런 오해를 받을수도 있고...그런 구설에 오르기는 싫

  거든. ”

 

 30년 정치를 하다 이제 초야에 묻힌지 10년이라고 말하는 박덕수. 그래서인지 이젠 정치에 대해 염증을 느껴도 단단히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 덕수여서인지 행여 있을수도 있는 세상의 구설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을수 없는 처지고.

 

 “ 거처야 뭐 여기 내 별장에서 앞으로 계속 지내도 무방할거고...어차피 나도 혼

  자서 참 쓸쓸했는데...가끔 이렇게 내 말동무도 해주고...그러면서 김태원 선생 일

  을 좀 도와주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해본거에요. 김태원 선생이야 서울에 살지만

  인터넷이야 어차피 어디 살던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는것 아닌가. 연락이야 전

  화도 있고...휴대폰도 있으니 그걸로 서로 연락취하면 되는 일이고. 아, 참 그러고

  보니 유리양 휴대폰이 있던가 ? ”

 “ 지금은 없어요. 맨몸으로 청우일심회를 탈출한거라니까요. 제가 쓰던 휴대폰은

  아직 거기 있겠죠. ”

 “ 참, 그렇겠군. 그럼 내 조만간 유리양 휴대폰은 구해주도록 하지. ”

 

 김태원의 민족신문을 도와줄 생각이 없느냐는 덕수의 제안을 받은 유리. 그녀는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5회에 계속)

 

   댓글 (0)

댓글은 글쓰기 권한이 있어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전글 :
다음글 : 유리 (3)
신고하기 프린트 로그인 후 사용하십시오. r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