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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드라의 소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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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니저 : 최현순  |  멤버 : 9  |  개설일 : 200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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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3)
  2009/09/01 06:29
최현순      조회 27  추천 0

 

 “ 가만있자...그러나 저러나 기왕 이렇게 된거 두 사람도 정식으로 인사를 나

  누는게 좋겠군. 우선 유리양...이름이 권유리라고 했었지 ? 여기 이 분은 김

  태원 선생이라 하는 분으로 나하고는 십수년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사람이에

  요. 그리고 김선생. 여기 이 소녀는 권유리양이라 하는데...어떻게 하다보니

  어제부터 잠시 내 별장에 머무르게 되었어요. ”

 

 덕수가 두 사람을 서로에게 소개하고 태원과 유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태원으로선 갑작스럽게 박덕수의 집에 와 있는 권유리란 소녀가 궁금할수밖에 없는일. 덕수가 그런 태원에게 설명을 덧붙인다.

 

 “ 실은...아마 증산도류 종교단체에서 있다가 탈출을 한 소녀인 모양야. 강원도

  산골에 갇혀 있었다는데 어떻게 천신만고 끝에 여기까지 온 모양이더군. 그래

  서 어제 기진맥진한 상태로 내 별장뒤에 쓰러져 있었던거고. 사연을 들어보니

  오갈데 없는 처지이기도 해서. 일단 간밤에 여기서 자도록 한거지. ”

 “ 증산도에 있었다구요 ? ”

 “ 정확히 증산도는 아니고 대충 그쪽 계열의 종교단체인 모양이야. 명칭이 청우

  일심화라 하더군. ”

 “ 허허...아니, 그런데...강원도에 있었다면서...아니, 대체 강원도 어디에 있었길

  래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단 말입니까. ”

 

 박덕수의 별장이 있는곳은 경기도 이천. 따라서 강원도 산골에 갇혀 있었다는 소녀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엔 태원도 놀랄수밖에 없다.

 

 “ 나도 그래서 처음엔 놀랐어. 하지만 저 소녀가 그리 말하니 그대로 믿는수밖에

  . ”

 “ 허허...참...아니, 어쨌든 박의원님 댁에 그런 소녀가 다 머무르게 되다니. 참 뜻

  밖이고 놀라운 일입니다그려. ”

 “ 허허...그러게 말일세. 대체 무슨 인연인지. ”

 

 한편 유리는 그 사이 부엌으로 가서 두 사람이 마실 차를 한잔 타서 내온다. 유리로선 그런대로 더부살이를 하는 처신에 나름대로 빨리 적응을 하는듯 하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몸소 한 유리에 덕수는 고맙고 미안해서 어찌할바를 모른다.

 

 “ 허허...이거 이렇게까진 안 해도 좋은데...아무튼 고마워요 유리양. ”

 “ 이야기나누세요. 전 그럼 들어가 있을께요. ”

 “ 허허...뭐 나와있어도 괜찮은 자리인데...오히려 방에 혼자 있으면 답답하지 않

  겠어요 ? 정 그러면 내 서재에 가서 책이라도 읽고 있던가... ”

 

 유리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덕수가 가리켜준 서재로 들어가고 두 사람은 차를 마시며 환담을 나눈다.

 

 “ 실은 그래서...아까 자네에 대해서도 어찌 소개를 할지 좀 망설였어. 민족신문 어

  쩌구 하면 공연한 오해를 할수도 있으니말야. 아무래도 그런 단체에서 있다가 탈

  출을 한 소녀이다보니. 여러 가지로 많이 경계가 되는 모양이더군. 처음에 정신을

  차려서도 내게 대뜸 여기 혹시 청우일심회는 아니냐고 묻기까지 하지 뭐야. ”

 “ 허허...박의원님께요 ? ”

 “ 그래. 난 순간 대체 이 소녀가 무슨 도깨비같은 헛소리를 하나 싶어 어리둥절해

  했었지. 게다가 지금은 내가 유리양에게 내어준 추리닝 복장을 하고 있지만, 처음

  발견했을땐 아마도 그 종교단체 제복인듯한 하얀 한복차림이었다니까. 허허...나도

  그래서 처음엔 몹시 당황하고 놀랐었어. ”

 “ 그러셨을수도 있겠네요. ”

 

 이른바 민족종교 계열에 속하는 셈이라 할 수 있는 청우일심회란 단체에서 탈출했다는 권유리란 소녀. 처음 그 소녀와 맞닥뜨렸을때 덕수의 당황했을 심정이 이해가 간다는듯 태원은 고개를 끄덕인다.

 

 “ 저야 증산도니 환단고기니...그런거 하는 놈들은 다 싫어하는 사람이긴 합니다

  만... ”

 “ .,..... ”

 “ 아무튼 그 소녀 입장에선 불필요한 오해를 할수도 있겠군요. ”

 

 그러고보니 참 공연한 자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에서일까. 태원도 웬지 좀 난감해하는 눈치다.

 

 “ 그래. 다행인지 불행인지 유리양이 바로 안으로 들어가긴 했지만...괜히 또 유리

  양이 자네에 대해 어려워하는건 아닌지 모르겠구먼. 그것 참...생각해보니 여러가

  지로 좀 난처한 자리가 되어 버렸는걸 ? ”

 

 태원은 씁쓸한듯 미소를 짓는다. 덕수의 말이 이어진다.

 

 “ 근데...그 민족신문이란건 정말 자네 혼자서 하는건가 ? ”

 “ 허허...몇번이나 말씀드렸잖습니까 ? 도와주는놈 하나도 없다니까요. 가끔 웹관

  리나 게시판 관리를 대신 해주는 젊은 녀석들이 있기는 했는데...요즘 젊은 녀석

  들 참 믿을놈 거의 없더라구요. 보통 한 몇 달 해주는척 하다가 대개는 자기 일

  이 바쁘다고 그만두고...그래서...화딱지 나서라도 요즘은 따로 웹관리 담당자도

  두지 않고 저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

 “ 허허허...아무리 그래도...김태원 선생도 이제 나이 50대 후반인데...그래도 인터

  넷 웹진도 손수 관리하고 할 정도면 대단한 실력 아닌가 ? 나만해도 그저 가끔

  관심있는 사이트나 클릭해서 눈팅정도나 하는 그 정도인데 말일세... ”

 “ 아이구,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솔직히 지난 한 6,7년은 그놈의 민족신문인지

  뭔지에 죽자살자 매달리다시피 해서...까놓고 말해 완전히 인터넷 중독이나 다

  름없이 살아온 세월인것을요. 아니, 중독이나 다름없는게 아니라 솔직히 중독

  이었죠 뭐. 게다가...인터넷이란게 유용한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론 별의별 이상

  한 놈들도 많고 괴상한 놈들도 많다보니...그야말로 생고생이었습죠. ”

 “ 뭐 여하튼...김태원 동지의 그 민족주의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나 역시 높이

  평가하는 바 이니까...그래서 내 지난 십수년 자네를 관심을 갖고 지켜봐온것

  이기도 하고 말일세. ”

 “ 아이구, 박의원님도 참...말씀만 그렇게 하실게 아니라 정 그럴양이면 어디서

  민족신문 후원해 줄만한 괜찮은 분이나 한 섭외해 주실일이지. 솔직히 입에

  만 발린 칭찬은 이제 별로 반갑지도 않습니다요. 하도 지난 10년 가까운 세

  월을 여러 가지 일들에 시달려왔기 때문에 말이죠. ”

 

 지금은 정치를 그만두고 초야에 묻힌 박덕수도 나름대로 회한과 사연이 많은 삶이었지만, 김태원 또한 그 못지않게 회한이 많은듯 하다. 손을 내젓기까지 하며 푸념섞어 늘어놓는 그의 넋두리엔 깊은 비애가 담겨있다.

 

 “ 헌데... ”

 

 차를 한모금 마시고 태원이 다시 입을 연다.

 

 “ 저 권유리란 학생... - 학생이라 부르는게 적절할지 모르겠습니다만 - 은 그럼

  이제 어찌하실 요량인것인지요 ? 청우일심회란데를 탈출해 여기까지 온 것이라

  면... ”

 “ 글쎄...이야기를 듣고보니 부모님도 안 계시고 어디 그렇다고 의탁할만한 곳도

  없는 그런 신세라...당분간은 이곳에서 내가 보호하는 수밖에 없겠다 그런 생각

  을 하기도 했고. 아직 이렇다저렇다 결정한것은 없어. 그리고 그 문제야 무엇보

  다 권유리양 의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야. ”

 “ 그야 그렇습니다만... ”

 “ 가만, 이거 이럴게 아니라 우리 권유리양을 다시 부르지 ? 이거 뭐 우리가 무

  슨 비밀회동이라도 갖는것도 아닌데, 혼자만 무료하게 방안에 있게 하는것도 그

  렇군. 자네 생각은 어떤가 ? ”

 “ 저야 뭐 특별히 싫거나 할 이유는 없죠. 그리고 그...청 어쩌구 하는 종교단체에

  감금되어 있다가 탈출했다고 하니, 대체 어떤 소녀인가 호기심도 생기고 말입니

  다. ”

 

 


 결국 유리는 다시 거실로 나오게 되었다. 태원이 먼저 유리에게 말을 건넨다.

 

 “ 박의원님한테서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요. 그...증산도류 종교단체에서 있다가 탈

  출을 했었다구 ? ”

 

 비록 아까 덕수가 태원에 대해 십수년전부터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는 소개를 하긴 했지만 유리입장에선 여전히 경계심이 생길수밖에 없다.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자 덕수가 입을 연다.

 

 “ 안심해요.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나도 그렇고 여기 김태원 선생도 그런 종교단체

  하곤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마음 푹 놓고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된다

  니까. ”

 “ 네... ”

 

 결국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리. 태원이 그런 유리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 그것참...어린나이에 참 힘든일을 겪었겠구먼. ”

 

 시인하는것인지 유리는 대답없이 미소만 살짝 지어보인다. 덕수는 유리보고 자리에 앉을것을 권하고 결국 유리는 덕수와 태원이 마주앉은 옆에 와서 앉는다.

 

 “ 이미 이야기했지만 여기 김태원 선생은 나와는 십수년전부터 친분이 있어왔던

  사람이고, 이제 정계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가는 나지만, 그런 나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지원해주고 있는 그런 사람중의 하나지. 그리고 인터넷에서 손수

  웹진을 운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말이야. ”

 

 그 말에 유리도 다소 놀란듯 태원을 다시한번 쳐다본다. 태원의 나이가 어느정도 되는지 지금 유리가 가늠하긴 힘들지만, 그래도 어쨌든 나이고 50은 족히 넘어보이는 그런 인상이다. 아니 오히려 칠순의 박덕수보다도 더 나이들어보이는 느낌마저 드는데 그런 노인이 손수 인터넷 웹진을 운영한다니. 어찌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 허허허...이분도 나이는 어느덧 50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지만, 그 열정과 기백

  만은 20대 젊은 청년 못지 않다니까. 그 점에 나도 늘 감탄하고 있고 말이야. ”

 “ 아이고, 박의원님. 그런 말씀은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쑥스러워 진다니까요. ”

 “ 쑥스럽긴 이 사람아. 사실인걸 뭐. 허허허... ”

 호탕하게 웃는 덕수와 태원. 그렇게 이런저런 환담이 오가고 그러는 동안 유리도 마음의 여유가 좀 생기는듯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중 태원이 불쑥 한가지 제안을 한다.

 “ 가만있자...박의원님. 우리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인근의 노래방이라도 가서 노

  래라도 부를까요 ? 여기 별장안에서만 있으니 답답하지 않습니까 ? ”

 “ 노래방 ? 글쎄...아직 오전시간이라...지금 여는 노래방이 있을지는 모르겠구먼. ”

 

 덕수나 태원이나 모두 노래를 부르는걸 좋아하는 모양이다. 대뜸 노래방부터 찾는것을 보면 말이다.

 

 “ 어때요 유리양은 ? 여기 김태원 선생...노래 부르는 솜씨도 아주 일품이에요. 나

  야 그저 흘러간 노래나 한두개 정도 흥얼거리는 정도지만...유리양은 노래방 가는

  거 좋아하나요 ? ”

 “ 네...뭐...좋아해요... ”

 

 태원과 덕수의 제안이 그리 싫지는 않은듯 유리도 그렇게 대답한다. 하지만 덕수의 말대로 아직은 이른 오전시간. 나들이 삼아 산보삼아 함께 외출을 나가 인근의 마을을 좀 둘러보곤 하다가 정오 가까이쯤 되어 노래방에 들렀다.

 

 “ 안개낀 장충단 공원 누구를 찾아왔나 / 낙엽송 고목을 말없이 쓸어안고 /

  울고만 있는가 / 지난날 이 자리에 새긴 그 이름 / 뚜렷이 남은 이 글씨

   다시한번 어루만지며 / 돌아서는 장충단 공원

   비탈길 산길을 따라 거닐던 산 기슭에 / 수많은 사연에 가슴을 움켜쥐고 /

  울고만 있는가 / 가버린 그 사람이 남긴 발자취 / 낙엽만 쌓여 있는데

   외로움을 달래가면서 / 돌아서는 장충단공원 ”

 

 김태원은 70년대에 유행했던 유명한 대중가요 ‘ 안개낀 장충단 공원 ’을 불렀다. 소위 18번이라 불리우는 자신만의 애창곡엔 자신만이 갖고 있는 어떤 남다른 사연 같은것이라도 담겨있는 것일까. 구성진 목소리로 ‘ 안개낀 장충단 공원 ’을 부르는 태원의 모습은 웬지 의미심장하다. 한편 박덕수는 ‘ 돌아와요 부산항에 ’를 불렀고 이어 유리의 차례가 되자 그녀는 ‘ 수덕사의 여승 ’을 노래했다.

 

 “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온 임 잊을길 없어 /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울적에

   아아아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산길백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길 없어 /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울적에

   아아아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

 

 아직 나이어린 소녀인 유리가 흘러간 노래인 ‘ 수덕사의 여승 ’을 알고 있다는 것은 좀 이채롭다. 나이 50대 후반인 김태원 그리고 칠순의 박덕수의 분위기에 맞춰주기 위해 일부러 그런 노래를 택한 것 같기도 하지만.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는 유리이다보니 ‘ 수덕사의 여승 ’을 부르는 그녀의 표정도 범상치만은 않아 보인다.

 

 “ 유리양... ”

 

 노래방을 나와서 인근 공원에서 세 사람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때 태원이 유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넨다.

 

 “ 아까 이야기는 대충 들었지만...증산도류 종교단체에 있다가 탈출했다고 했었죠

  ? ”

 “ 네... ”

 

 새삼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좀 언짢기라도 한지 유리의 표정은 조금 어두워진다.

 

 “ 사실 나도 증산도류 종교단체나 환단고기류 빠돌이들은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는

  그런 사람이긴 해요. 그리고...유리양에게 그런 사연이 있다고 하길래 아깐 말은

  안 했지만... ”

 “ ....... ”

 “ 실은 인터넷에서 ‘ 민족신문 ’이란 웹진을 수년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기도 해

  요. ”

 “ 예 ? ”

 “ 아...하하...이런...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내 분명히 말하지 않았나. 증산도류나

  환단고기류 애들하곤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고. 내가 이야기하는것은...우리사회에

  서 제대로된 정치철학으로써의 민족주의를 한번 구현해보자. 그런 취지에서 그런

  웹진을 만든 그런 사람이란 말이죠. ”

 

 태원의 그와같은 말이 지금 유리에겐 어떻게 와닿을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하지만 태원은 여전히 유리에게 관심이 가는듯 그녀에게 이야기를 계속 늘어놓는다.

 

 “ 유리양에게 어떻게 이해가 될지 모르겠지만...우리사회가 이렇게 정치가 혼란스

  럽고. 또 남남갈등도 갈수록 심화되는건...우리사회에 보수든 진보든 모두들 제대

  로된 이념이 아닌 사이비들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존의 좌우갈등 구도를 벗어난 새로운 이념을 구현해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그런

  웹진을 만들었다 이 이야기죠. 그래서 민족신문이 극복하고자 하는 것들이 있어

  요. 우선 가장 크게는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사이비 보수와 북한체제

  를 일절 비판않는 사이비 진보. 그네들이지만, 또 그 다음으로 극복해야할 대상이

  ... ”

 “ ...... ”

 “ 바로 유리양이 얼마전까지 몸담고 있었다는 그런 증산도류 종교단체들과 소위

  환단고기 빠돌이들이에요. ”

 

 태원의 말에 유리는 별다른 대꾸가 없다. 여하튼 소위 증산도류 종교단체나 환단고기 빠돌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태원이 말하는 민족신문이니 민족주의니 하는 개념이 유리에겐 더더욱 혼돈으로 와닿는다. 사이비 보수니 사이비 진보니 하는 개념은 정치나 이념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유리에겐 더 어려운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저녁때 박덕수의 별장엔 또 한사람의 손님이 들렀다. 아니, 손님이 아니라 사실은 덕수의 아들 박찬일이 찾아온 것이다. 서울에 살고 있는 덕수의 막내아들 찬일은 두어달에 한번정도 아버지의 별장에 내려오곤 했는데, 마침 오늘이 그날이 된 것이다. 그래서 오늘 덕수의 저녁식탁은 모처럼 풍성한 자리가 되었다. 어제부터 덕수의 별장에 머무르게 된 유리, 그리고 박덕수와 십수년간 친분이 있었다는 김태원, 거기에 아들 찬일까지. 그렇게 모인 저녁식사 자리는 화기애애한 웃음꽃이 핀다.

 

 “ 가만있자 그러고보니... ”

 

 한참 식사를 하며 이런저런 환담이 오가던중 박덕수가 이야기를 꺼낸다.

 

 “ 우연찮게도...오늘 이 자리에 모인 사람중 나 빼고는 모두 솔로구먼 그래. 우

  리 김태원 선생도 그렇고, 찬일이도 그렇고, 거기다 우리 유리양까지 말야. ”

 

 인터넷에서 ‘ 민족신문 ’이란 웹진을 운영하며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민족주의 철학을 연구해 보자는 소신을 가졌다는 김태원은 그런 일에대한 열정으로 일생을 보낸 탓인지 50대 후반이 다 되도록 장가를 못 갔다고 했다. 한편 박덕수의 2녀1남중 막내인 찬일은 올해 서른이지만 덕수의 자녀중 유일하게 아직 미혼이고 게다가 청우일심회에서 탈출한 열아홉 소녀 유리야 당연히 솔로니. 우연찮게도 덕수를 제외하곤 모두 혼자인 것이다. 50대 후반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김태원, 나이 서른이니 혼기가 지났다면 지났다고 할 수 있는 덕수의 막내 찬일 - 물론 요즘은 서른이 넘어서야 결혼을 하게 되는 남녀도 비일비재 하지만 - 거기에 열아홉살 소녀 유리깢.

 

 “ 그러고보니 김태원 선생이야말로...맨날 그 무슨 민족주의인지 뭔지 거기에만

  푹 빠져 사실게 아니라 자신을 좀 돌아보시는게 어떻겠습니까. 다른건 몰라도

  우리 김태원 동지같은 훌륭한 소신과 신념을 가진 철학자께서 대를 이을만한

  자손하나 없대서야 말이 되나. 김동지를 닮은 자손이라도 있어야 그래야지 여러

  가지로 굴절되고 왜곡된 우리나라의 민족주의를...그 신념을 이어갈 후예가 탄생

  할것 아닌가 그런 말씀입니다. ”

 “ 박의원님도 참...거 왜 갑자기 남의 아픈곳은 찌르고 그러십니까 ? 그리고 내 나

  이도 이제 60이 다 되어가는데...이제와서 새삼 무슨 결혼같은걸 할 나이도 아니

  고... ”

 “ 그러니까 더더욱 하는 말씀입니다. 장가를 가요 늦었더라도. 그래야 사림이 좀

  이렇게 추레해 보이지도 않고 빛도 좀 나지... ”

 “ 허허 참...자꾸 그렇게 놀리시면 저 진짜 화낼겁니다. 거 그런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 좀 하고...그 제가 누차 하는 이야기지만 민족신문 후원할만한 그런 사람이

  나 좀 알아봐 달라니까요. 아니면...정말 박의원님이라도 좀 도와주시던가... ”

 “ 그 이야기야 이미 다 결론난 이야기고...여하튼 혼자 쓸쓸히 사는 김태원 동지

  를 보면 내가 다 안쓰러워져서 그래요. 이제 나이도 점점 먹어가는데 저 사람이

  대체 앞으론 혼자 어떻게 여생을 버텨가려나 하고... ”

 

 덕수가 계속 놀려대자 김태원도 조금은 화가 나는듯 했다. 은근슬쩍 화제를 돌린다.

 

 “ 사돈 남말 하실게 아니라 그렇다면 우리 찬일군이나 좀 챙겨주시는게 어떻겠습

  니까. 박찬일군도 이제 서른인데 아직 혼자잖아요. 저야 뭐 어디 주위에 친구가

  많은것도 아니니...찬일군 중매나 서줄 그런 처지도 못 됩니다만... ”

 “ 허허...이 사람도 참...이번엔 내가 당했구먼 그래... ”

 

 난데없이 자신의 이야기가 언급되자 찬일은 조금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그런 찬일에게 태원이 말을 건넨다.

 

 “ 근데 진짜...박찬일군은 정말 사귀는 사람도 여태 없는건가 ? 그러지말고 어디

  어떤 타입의 여자가 좋은지 이야기라도 해보지그래. ”

 

 찬일은 그런 태원을 슬쩍 흘겨본다.

 

 “ 저야 뭐...결혼을 혼자 하는것도 아닌데...절 좋아하는 여자가 없는데 어쩌겠습니

  까 ? ”

 “ 그러니까 이야길 해 보라고...내가 아무리 빈한한 처지라고는 하지만...박의원님

  낯을 봐서라도 정 그러면...중신이라도 한번 서줄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

 “ 아닙니다. 전...그런데까지 신경써 주시진 않으셔도 돼요. ”

 “ 허허 이런...이거 어쩌다가 결혼 이야기가 화제로 떠올랐는지 모르겠구먼 그래.

  이러다 분위기만 공연히 어색해지겠는데...자자 그럼...그런 이야긴 그만하고 술이

  나 한잔 더 하지 그래. ”

 

 저녁식탁위에 놓여진 술잔에 덕수가 각기 술을 한잔씩 따라준다. 유리는 처음엔 사양을 했지만 덕수와 태원등이 거듭 권하자 마지못해 한잔을 마신다.

 

 “ 여하튼...오늘은 오랜만에 식탁이 풍성하니 기분이 참 좋네그려. 오늘은 마치 무

  슨 날인거 같아. 어제...여기 유리양이 갑자기 내 별장 뒤뜰에서 발견된것도 그렇

  고...컥...커억커억... ”

 

 반주삼아 들고있는 술을 마시던 덕수가 갑자기 재채기를 한다. 속이 갑갑하기라도 한지 가슴을 손으로 턱턱 쳐본다.

 

 “ 아니...박 의원님 ? ”

 

 그 모습을 본 세 사람이 모두 놀란다. 놀라서 덕수 가까이로 다가오지만 덕수는 이내 손을 내젓는다.

 

 “ 아니야...괜찮아. 아마 술을 오랜만에...그것도 급히 마시다보니 사래가 좀 들렸

  ...어이쿠 쿨럭...아냐,아냐...괜찮네...괜찮아... ”

 

 말을 하다 다시 토할듯이 재채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내 곧 진정이 되었다면 덕수는 거듭 괜찮다고 말한다.

 

 “ 정말 어디 불편하신거 아니세요 의원님 ? ”

 

 유리가 걱정이 되는지 덕수의 안색을 살피며 묻는다. 하지만 덕수는 괜찮다고 다시한번 강조해 말한다.

 

 “ 허허...이런...아무래도 나도 늙긴 늙었나봐. 요즘은 이렇게 술을 마시면 힘이 들

  어. 예전같지가 않고...그래서 예전에 비해 술을 잘 안하는 것이기도 하지만...아냐

  아냐. 이제 괜찮다니까. 잠깐 사래가 들렸을 뿐이라니까 그러네. 괜찮아. 어서 앉

  아 마저 식사들 해요. ”

 

 덕수의 말에 세사람은 다시 자리에 앉아 수저를 든다. 하지만 여전히 덕수가 염려되는듯 자주 그의 안색을 살펴본다. 식사를 다 마치고 유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별장의 1층 창밖 베란다로 나온다. 혼자 상념에라도 잠기는듯 하다. 청우일심회를 극적으로 탈출 며칠을 산속을 헤매다 뜻밖에 이천에 있는 박덕수 전 의원의 별장까지 오게 된 그녀다. 여러 가지로 착잡한 심경이 들 수 밖에 없는 마음상태 아닌가. 말없이 밤 하늘을 바라본다.

 

 “ 나와계셨어요 ? ”

 

 유리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다. 박덕수의 아들 찬일이다.

 

 “ 네, 그냥 좀...밤하늘을... ”

 “ 네에... ”

 

 고개를 끄덕이는 찬일.

 

 “ 아까 아버님께서 소개하실 때 대충 이야기는 들었지만...그 무슨 증산도쪽 단체

  에서 있다가 탈출을 하셨다구요 ? ”

 “ 청우일심회요. 거기...강원도 영월에 총무원이 있는데...거기서 살다가 탈출을 한

  거에요. ”

 “ 네에... ”

 

 자연스럽게 찬일은 유리 옆에 나란히 서서 난간에 기대는 모양새가 된다.

 

 “ 많이 힘드셨었나봐요 ? ”

 “ ...사연이 좀...많았죠. ”

 “ 아직 나이도 어린분이...감당하긴 힘드셨을것 같아요. ”

 “ 지금은 그래도...괜찮아졌어요. 뜻하지않게 이렇게...박의원님 별장에서 신세도

  지게되고... ”

 “ 아버님은... ”

 

 이야기를 꺼내던 찬일이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그도 밤 하늘을 잠시 응시해본다.

 

 “ 나름대로 일관된 신념과 소신을 가지고 정치를 하셨던 분이세요. ”

 “ ...... ”

 “ 세상이 아버지의...특히 90년대 중,후반...말년의 정치행보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을 많이 하지만...제가 지켜본 아버님은 나름대로 그런 원칙을 갖고 일생을 사

  신 분이시거든요.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 그리고 상식이 통하는 사회... ”

 

 유리는 별다른 대꾸없이 찬일의 말을 듣기만 한다. 아직 나이가 어려 십수년전 한때 차세대 주자로 물망에 오르기까지 했다는 박덕수에 대해서 이전엔 잘 몰랐지만, 어제 박덕수가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야기를 듣고난뒤라 그에 대해 조금은 이해하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 유리다.

 

 


(4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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