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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드라의 소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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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니저 : 최현순  |  멤버 : 9  |  개설일 : 200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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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1)
  2009/08/31 18:20
최현순      조회 36  추천 0

 

 산길을 걷고 또 걸은지가 벌써 며칠째다. 처음 청우일심회(靑友一心會)에서 탈출을 시도했을때부터, 유리가 택한 길은 산 위쪽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강원도 영월의 한 산 중턱에 위치한 청우일심회 총무원에서 빠져나오려면 그 길을 택하는 수 밖에 없었다. 산 아래쪽으로 내려가려 한다면 얼마 가지도 못해 청우일심회 관계자 눈에 띄어 바로 붙잡힐게 뻔하게 때문이었다. 그래서 유리는 산 위쪽으로 향하는 길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렇게 시도한 탈출. 그리고 이렇게 하염없이 걷기만 한게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다. 시간이나 거리상으로 봐서도 이 정도까지 왔으면 그래도 이미 청우일심회 사정권에선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을텐데. 그러나 아직 열아홉살 어린 나이인 유리의 판단으론 여전히 안심이 되지 않나보다. 물론 산길의 특성상 무작정 마냥 위쪽으로만 가게 되어있지는 않고 몇 번이나 아래쪽으로 갔다 위로 다시 가는길을 수도없이 오르락 내리락 했다. 하지만 갈림길이 나올땐 무조건 유리는 위쪽 방향으로 길이 나있는 쪽을 택했다.

 

 다행히 지금이 무더운 여름이길래 망정이지 겨울이었다면 유리는 추운 산속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게다가 옷은 청우일심회를 빠져나올때 입고 있던 하얀색 한복차림 그대로였으니 만약 중간에 등산객하고라도 마주쳤다면, 상대방은 혹 무슨 전설의 고향마냥 천년묵은 여우가 젊은 여자로 둔갑이라도 한 것 아닌가하고 혼비백산 했을지도 모를일이다. 여하튼 이제 유리는 지쳐있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허기도 진다. 그나저나 대체 여기는 어디쯤일까. 산속이니 방향도 가늠할수 없고, 다만 지금은 해가 멀리 보이는걸로 봐서 낮인것은 분명하다. 여하튼 이정도쯤 왔으면 그래도 청우일심회 사정권은 벗어났겠지. 그런 생각에 유리는 어느정도쯤 가서 보이는 갈림길에서 아래쪽 길을 택해본다. 어차피 이제 더 이상 걸을 힘도 없었다. 아래로 내려가 마을이라도 보이면 배가 고프다며 도움이라도 청해야겠다. 그런 생각으로 유리는 터덜터덜 아래쪽 길을 내려가고 있다.

 

 박덕수. 그가 정계를 떠나 경기도 이천의 자신의 고향 별장에 은거한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어간다. 지금부터 어언 20여년전인 1987년. 군사정권 물러가라는 민중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고, 80년 5월 광주 유혈참극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세력은 결국 성난 민중의 함성에 굴복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골자로 한 6.29 선언을 했다. 하지만 야당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대다수 국민의 열망과는 달리 김씨성을 가진 두 야당지도자는 끝내 각기 대선후보로 출마 국민을 실망시켰던 그 뜨거웠던 해. 야당단일화를 요구하며 무소속 잔류를 선언했던 40대의 젊은 야당정치인 다섯명이 있었다. 바로 박덕수를 비롯한 홍원석,조현종,이순철,김명수가 그들이었다. 특히 당시 박덕수 의원은 몸소 삭발까지 하며 야당 후보 단일화에 그 누구보다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이듬해 열린 5.18 광주민주화 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에선 철저한 준비와 예리한 질문으로 ‘ 청문회 스타 ’ 반열에 오르기도 했던 그. 한때, 차세대 야당 지도자감으로 여론조사에선 1,2위에 오르내리곤 했던 그였지만. 90년대 후반무렵부터 10년간 그의 정치행보는 하강국면이었다. 95년 지방선거 당시엔 서울시장에 출마하기도 했으나 근소한 표차로 낙선하고. 그후 정치권의 이합집산에 휩쓸리며 당적을 두어차례 바꾸기도 해 그도 별수없는 철새정치인이구나 하는 비난여론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면서 어느순간에서부터인가 신문 정치면에서 이름을 보기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세인들의 기억에서 잊혀져버린 박덕수 전 의원. 90년대 후반 이후에 보여준 그의 정치행보는 80년대 후반 야당후보 단일화 투쟁이나 청문회 스타 이미지를 많이 흐리게 하며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으나. 박덕수는 그래도 여전히 자부하고 있었다. 나는 그래도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썩어빠진 정치판에서 소신과 신념을 갖고 일관되게 행동해온 그 무엇이 있었노라고. 그 박덕수가 지금은 이천 고향별장에 칩거하고 있는것이다.

 

 한때 40대 기수로 세대교체를 부르짖기도 했던 박덕수지만 2008년 여름 현재 그의 나이는 이제 어느덧 칠순이다. 10여년전 출가한 그의 큰 딸과 역시 수년전 결혼한 둘째딸은 모두 서울에서 각기 살림을 차려 제 식구들과 생활하고 있고. 박덕수가 현역 정치인시절 살던 서초구의 집은 현재 막내아들이 기거하고 있다. 그리고 박덕수는 이천 고향에서 도자기 굽는것을 취미생활 삼으며 조용히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생활은 아무래도 언론이나 세상사람들 눈에 자주 뜨이기 마련이고 그래서 고향에서 조용히 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생각에 어릴적 자라던 고향터에 별장을 짓고 처음엔 서울과 이천별장을 오가며 살곤 했는데, 이젠 아예 이곳에 눌러살고 있는 박덕수다. 어느덧 희끗희끗해진 머리와 짙은 주름살. 그리고 젊은시절부터 그의 상징이기도 했던 굵은 검은테 안경은 이젠 그의 나이와 연륜을 한층 더 선명하게 나타내주고 있다.

 

 아래쪽 길을 택해 얼마를 걷고 또 걸었을까. 그러다 유리의 눈에 어떤 마을 같은것이 눈에 들어왔다. 며칠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며 이 더운 여름에 정처없이 산길만 헤매고 헤맨 유리다. 하지만 마을이 보이는것은 유리에겐 희망이자 두려움이기도 했다. 혹 도로 청우일심회가 있는 쪽으로 온 것은 아닐까 ? 하지만 멀리 보이는 마을 구도는 그쪽 동네는 일단 아닌것 같다. 한편 산길은 아직 한참을 더 내려가야한다. 얼마를 더 걸어갔을까. 한쪽은 비탈이고 한쪽은 평평한 숲지대로 되어있는곳이 보였다. 유리는 비탈쪽 길을 계속 걸었다.

 

 박덕수의 별장은 마을쪽으로 향하는 큰 길에서 조금 들어가 있는 숲길 뒤쪽에 있다. 뒤에는 작은 야산이 병풍처럼 에워싸있고 앞에는 숲길이 보이는 그런 공간이다. 별장 뒤쪽은 담 같은것을 별도로 설치하지도 않아 바로 산과 연결이 된다. 유리는 마침 그곳을 지나고 있었다.

 

 이곳에 웬 집일까 ? 유리는 의아했다. 짐작에 마을과는 거리가 어느정도 떨어진 곳인데. 이쪽에 집에 있기에 그리 적절한 위치같아 보이진 않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인 두려움도 다시 엄습해온다. 설마 청우일심회쪽 관계자가 사는 곳이라던가 혹은 그 관련 건물인건 아니겠지. - 청우일심회가 비록 군소규모 종교단체이긴 하지만 회관이 전국에 열두곳정도 있다는것 쯤은 유리도 알고 있다. - 무엇보다 유리는 근본적으로 이곳의 위치가 대략 어느쪽인지 조차 판단이 서지 않는다. 며칠을 무작정 산길을 걷기만 했기 때문에 방향감각은 이미 잃은지 오래다. 그저 처음엔 청우일심회 관계자들 눈에 뜨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산 위쪽길만 택해서 걸어갔던 곳이고. 그렇게 갈림길 몇군데를 지나고 지나 여기까지 온 것이다. - 영월에서 이천까지 산길만 타고 여기까지 왔을거라곤 진짜 꿈속에서조차 짐작이 어려울 것이다. - 그나저나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못해 몸이 어질어질하고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이젠 어느정도 안심을 해도 되는 지역인듯해 몸에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유리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 어 ! 저...저... ”

 

 박덕수는 별장 마당에 잠시 나와있었다.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중이었다. 그러다 뒤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것을 보았다. 의아해하며 가보았다 뭔가가 떨어지는것을 목격했다. 처음엔 하얀 물체 같은것이 비탈에서 굴러떨어지는것 같은데. 하지만 아닌것도 같았다. 사람인지 짐승인지 바로 판단이 될 수는 없는 찰나의 시간이었지만. 여하튼 뭔가 살아있는 무엇인것만은 분명한 듯 싶었다. 놀라서 덕수는 그쪽으로 달려가본다.

 

 “ 이...이봐요 정신차려요 ! 정신차려요 ! ”

 

 2층짜리 덕수의 별장집 건물보다 약간 높은 높이의 낭떠러지. 하지만 경사가 조금은 완만하고, 게다가 유리가 떨어진쪽은 장마때 내린 빗물자욱등이 고여있어 약간 젖은곳이라 크게 다치진 않았을것이다. 실제로 덕수가 맥을 짚어보니 숨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유리는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 덕수는 일단 급한대로 그녀를 없어서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리고 방안 침대에 눕힌다.

 

 그러나 저러나 대체 어디서 온 여자일까. 처음엔 경황이 없어 제대로 확인을 못 했지만 옷차림새부터가 희안하다. 유리가 입고 있는 흰 옷은 일반 한복도 아니고, 그렇다고 장례식때 입는 소복같은 형태도 아니다. 상하의 모두 하얀색이긴 한데 그럼 새로나온 개량한복 종류인가 그런 짐작도 든다. 유리야 청우일심회를 탈출할 때 그때 입고있던 그 종교단체의 제복차림 그대로인것이지만, 그런 사정을 알리없는 덕수로선 의아해할 뿐이다.

 

 “ 우웅...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유리는 눈을 떴다. 자신이 어떤 낯선 방안 침대에 누워있는 사실을 알고 본능적인 경계심이 인다. 대체 여기는 어디인가. 그러나 저러나 산길을 며칠을 헤매다가 정신을 잃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쓰러질 당시 상황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대체 내가 무엇을 하다 정신을 잃었더라. 조심스럽게 기억을 되뇌어본다. 그러다 순간 ‘ 헉 ! ’ 하며 입으로 손을 막는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설마 가까스로 탈출한 그 지긋지긋한 청우일심회에 도로 잡혀 들어온것인 아니겠지 ? 아무려면 그렇게 며칠을 죽자사자 산길을 헤메며 걸어왔는데. 청우일심회가 그렇게 규모가 큰 종교단체는 아니지 않는가. 강원도 한 산간벽지 중턱에 총무원 건물이 위치해 있어서 그 사정권을 빠져나오기가 힘들뿐이지. 그렇게 며칠을 걷고 또 걸었는데 아직까지 그 영향권내일리는 없다. 하지만 모르는 일 아닌가. 자신이 있는 이곳에 대체 어디인지 정식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유리로선 마음을 놓을수 없는 처지다. 그러나저러나 배가 고팠다. 하지만 그것을 호소하기도 곤란한 처지다. 여기가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유리의 입장에선. 여하튼 자신이 이 방안에 누워있다는것은 자신을 여기까지 데려온 사람이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그 사람은 이 건물 안 어딘가에 있다는 이야긴가. 유리가 지금 짐작할수 있는것은 거기까지다.

 

 ‘ 덜컥 ! ’

 

 잠시후 문이 열리고 사람이 하나 들어온다. 박덕수다. 유리는 순간 이불로 자신의 몸을 가린다. 어차피 여전히 옷을 입고 있는 상태라 특별히 가릴것도 없긴 하지만. 경계어린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본다.

 

 “ 정신이...든 거에요 ? ”

 “ 여...여긴 도대체... ”

 “ 여긴 내가 사는 별장이에요. 난 이 별장 주인이고...아까 아가씨가 뒤쪽 산길 비

  탈에서 떨어지는걸 발견하고 이리로 급히 데려온거에요. ”

 “ 벼...별장이라구요 ? ”

 “ 네. ”

 

 별장이란말에 조금은 안도가 되는 것일까. 유리는 한숨을 내쉰다.

 

 “ 그럼...처...청우일심횐 분명 아닌가죠 ? ”

 “ 네 ? ”

 

 이게 대체 무슨 소린가. ‘ 청우일심회 ’ 란 종교단체를 알 턱이 없는 덕수로선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린가 하며 어리둥절해 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유리는 여전히 안심이 안 되는지 다시한번 확인차 되묻는다.

 

 “ 그...그러니까...여기...청우일심회 아니냐구요. ”

 “ 청...뭐라구요 ? 뭔데요 그게 ? 여긴 그냥 내 별장이라니까요. ”

 “ 별...장... ? 그...그럼...아저씬 청우일심회하곤 아무 관련 없는 분이신거죠 ? ”

 “ 허...참...나. 아니 이봐요 아가씨 ? ”

 

 순간 덕수는 공연히 화까지 난다. 생판 모르는 웬 이상한 낯선 단체를 자꾸 입에 담는 유리도 그렇고, 그보다 이 천하의 박덕수를 젊은 여인이 알아보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난 것이다. 한때 5선의원을 역임한바도 있고, 무엇보다 80년대엔 야당후보 단일화 5인방으로 이름을 날렸고, 청문회 스타와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한 바도 있는 그 박덕수 아닌가. 하긴 지금은 박덕수가 정계를 떠난지 10년이 되어가고 무엇보다 이젠 늙어서 주름도 많이 생기고 머리카락도 희끗희끗해졌으니 젊은 여인이 자신을 바로 못알아 볼수도 있으려니 하는 생각도 들지만.

 

 “ 그...뭐...청...어쩌구 하는건 난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고. 뭐 이렇게 된거 통성

  명부터 합시다. 내 이름은 박덕수라고 해요. ”

 “ 저...전 권...유리에요. ”

 

 덕수가 먼저 자신을 소개하자 유리도 얼떨결에 통성명을 하고만다. 하지만 덕수에 대한 경계심이 완전히 가신것은 아니다.

 

 “ 어떻게 된거냐면...여긴 내가 사는 별장인거고...아가씨가 우리 별장 뒤쪽 경사

  진 비탈길 쪽에서 떨어졌단 말예요. 그걸 마침 밖에 나와있던 내가 발견하고

  정신을 잃은 아가씨를 이리로 데려온거고. ”

 “ 아... ”

 

 유리도 그제서야 상황이 이해가 가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튼 청우일심회하곤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인것만은 확실한듯 하다. 덕수의 말이 이어진다.

 

 “ 다행히 내가 아가씨가 떨어지는 그 순간 밖에 나와 있어서 발견했기에 망정이

  지. 정말 큰일났단 말이에요 ! 거기가...그래도 높다면 높다고 할 수 있는 그런

  높이인데말야... ”

 “ 고...고맙습니다 아저씨. 그리고 죄송합니다. ”

 

 그제서야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유리. 마음이 놓이자 이제 다시 배가 고프다. 며칠을 굶은 유리 아닌가.

 

 “ 아저씨... ”

 “ 말해요 아가씨. ”

 “ 시...실은 배가...고파요. 죄송하지만... ”

 “ 허허...참... ”

 

 기가막힌듯 헛웃음을 내뱉는 덕수.

 

 “ 그러잖아도 그럴것 같아서 내 부엌에 간단히 죽을 좀 끓여놨어요. 죽이라기

  보담은...좀 질은밥에 날계란이랑 간장 좀 섞어놓은거긴 하지만. 보니까 아무래

  도 산속을 헤매다 정신을 잃은것 같아서. 배가 고플것 같아서 준비해놓은 거에

  요. 나와서 먹도록 해요. 혹 밥이 싫으면...대신 라면이라도 끓여주리다. ”

 “ 아...아니에요. 죽...먹을께요. ”

 

 죽을 먹겠다고 말하는 유리. 그리고 덕수와 함께 방에서 나와 부엌 식탁으로 간다. 식탁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별장 거실내를 두리번거려 보기도 한다. 대체로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나고 이런저런 도자기가 보이는것이 이채롭다. 한편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져 가고 있었다. 어차피 저녁때가 되어가고 있는 시간대인 것이다.

 

 “ 근데...대체 여긴 어디에요 ? ”

 “ 어디긴...우리집이라니까. 내가 이 별장 주인이에요. ”

 “ 그게 아니라 여기 지역이...여기 대체 지역이 어디쯤 되냐구요 ? ”

 덕수가 차려준 죽을 먹으며 말을 붙이는 유리. 이제 기운이 조금씩 나나보다.

 “ 여긴 경기도 이천. ”

 “ 이천이라구요 ? ”

 “ 네 ! ”

 

 강조라도 하듯 조금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덕수. 근데 대체 이천이면 영월에선 어느정도 되는 거리인가. 학교때 유리는 지리점수가 좋은 편이긴 했다. 그러나 바로 영월에서 이천까지가 어느정도 거리쯤일지 가늠하긴 힘들다. 여하튼 정말 꽤 멀리까지 오긴 왔구나 하는 생각이다. 하긴 그만큼 독한마음 먹고 탈출한것이니까. 그리고 무조건 산길을 따라 걷고 또 걸은지가 대체 며칠째이던가.

 

 “ 켁... ”

 

 빈속에 오랜만에 음식이 들어가다보니 사래가 들린 모양이다. ‘ 컥...컥... ’하는 유리가 걱정되는지 덕수가 등을 좀 두드려준다.

 

 “ 좀...괜찮아요. ”

 “ 네, 고맙습니다 아저씨. ”

 

 아저씨라. 그러고보니 대체 권유리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이 여인의 나이는 얼마쯤 될까. 앳되보이는 얼굴이 아무리 많이 잡아도 20대 초반은 넘지 않았을거 같고, 한 열아홉이나 스무살쯤 ? 그렇다면 올해 칠순인 덕수에겐 손녀뻘인 여인일 것이다. 덕수야 슬하에 2녀1남중 막내아들 나이가 벌써 서른 아닌가. 그러니 아저씨보담은 할아버지가 더 적절한 호칭일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여인이 자신을 ‘ 아저씨 ’라고 부르는것을 보니 자신이 그렇게까지 나이들어 보이진 않는다는 생각에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 헌데...그러고보니...대체 그 복장하며...아니 도대체 어디서 온 거에요 아가씬

  ? 그리고 무슨 이유로 이런곳에서 정신을 다 잃었던거구. ”

 

 덕수의 물음이다. 유리는 잠시 착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어차피 작정하고 시도한 탈출 아닌가. 그리고 어쩌면 하마터면 산속에서 길을 잃고 그대로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르는데. 다행히도 이 박덕수란 사람의 별장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그에게 발견되었으니. 그 덕분에 목숨을 건진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초면의 이 낯선 남자에게 자신의 사연을 주절주절 다 늘어놓기도 그렇지 않은가.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인듯 유리는 입술을 지그시 깨문다.

 

 “ 허허...정말 무슨 말못할 사연이 있는가보군. ”

 

 유리가 쉽게 입을 열지 못하자 덕수가 그렇게 말한다. 그리고 사뭇 애처로운 눈빛으로 유리를 바라본다.

 

 “ 말못할 사연이 있다면야...초면인 내게 쉽게 이야기 꺼내기 어렵겠지만...하지만

  그래도 아가씨...- 아니, 저 유리라고 했었지 ? 그래, 유리양이라 부르기로 하지

  ... - 유리양이 이렇게 내 집 뒤쪽 산비탈에서 발견이 된 거고...게다가 옷차림새

  도 범상치 않으니. 나로선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일 아니겠나. 입장을 바꿔서 생

  각해도 그런 사람이 산속에서 나와 쓰러져 있는것을 봤다면 유리양도 궁금해하지

  않을수 있겠어 ? ”

 “ 청우...일심회란 곳에서 탈출해 나왔어요... ”

 

 유리는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 청...뭐라고 ? ”

 “ 청우일심회요. ”

 “ 청우일심회 ? 그게 뭐하는 곳인데 ? 가만 그러고보니 아까부터도 계속 그 청

  ...뭐라는 단체를 입에 담더만...여기가 혹시 청우일심회 아니냐고 묻기도 했

  었지. 당연히 나야 그 청 뭐라는 곳하곤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네만. 대체 그

 게 뭐하는 곳인데 ? 무슨 단체인건가 ? 그리고 탈출이라니 ? ”

 “ 종교단체에요. ”

 

 짤막하게 대답하는 유리.

 

 “ 종교단체라구 ? 아니, 우리나라에 그런 종교단체도 있었단 말인가. ”

 

 덕수로선 생소할 수밖에 없는 종교단체다. 유리의 말이 이어진다.

 

 “ 당연히 잘 모르실거에요. 새로생긴 종교니까요...소위 신흥종교라는... ”

 “ 허허...나 이거참...허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나라에 그런 종교가 다

  있었단 말인가 ? 그 참...사람은 평생을 배워도 다 못 배운단 말이 맞긴 맞나

  보구먼. 내가 나이가 벌써 칠순이고 정치판에도 한 30년 있으면서 별의별 사

  람을 다 만나보기도 했었는데...그런 단체가 있었다는것도 여태 모르고 있었

  다니 말이야. ”

 “ 역사는 한 10년이 조금 넘는 단체에요... ”

 “ 허어...그래 ? 헌데 대체 거기가 어떤 종교 단체인데 ? ”

 “ 취지는...우리나라에 서양문물, 서양귀신이 침투해와서 민족혼을 다 잡아먹

  는다며 제대로 된 민족정신, 민족혼을 일깨우자며 그런 취지로 만들어진 종

  교라고 해여. 설봉(雪峯)도인이란 분이 그 종교 창시자면서 대표신데... - 그

  곳에선 대성사(大聖師)님이라 부르지만...큰 성인이 되실 스승이란 의미에서

  대성사님이라 불러요. ”

 “ 가...가만 있어봐... ”

 

 유리가 말하는 그 청우일심회란 종교단체에 대해 그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지 덕수는 잠시 판단에 혼란이 생긴다. 그래서 잠시 유리의 말을 끊고 묻는다.

 

 “ 가만있자...근데...그렇다면 혹시 거기도 그 무슨...증산도인가 그쪽 계열 종교단

  체쯤 되는건가 ? 내가 듣기론 그 증산도에서 떨어져나온 종교단체만 해도 국내

  에 40여곳이 넘는다 하더만... ”

 “ 증산도 계열은 아니에요. 뭐 굳이 분류하자면...소위 그 민족종교란 범주에 포함

  되겠지만... ”

 “ ...... ”

 “ 그...대성사님이란 분은 원래 부산 범일동에 있는 설봉사란 절의 주지스님이셨

  다고 들었어요. ”

 “ 설봉사 ? 그런 절이 부산에 있다는건 들어본적 있는것 같군. 나도 옛날에 부산

  에서 국회의원 출마를 한적도 있고 하니까 말야. 헌데...그 대성산가 하는 사람이

  설봉사 주지였다구 ? ”

 “ 네, 그렇게 알고 있어요. ”

 “ 헌데, 그럼 유리양은 대체 어떻게 그런 종교단체를 알게 된거지 ? 그리고 또

  왜 그곳을 탈출하게 된거고 ? ”

 

 역시 쉽게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인건지 유리는 말이 없다. 그녀는 묵묵히 그릇에 담긴 죽덩어리를 두어숟갈 떠먹는다. 이제 허기는 어느정도 가신것 같다.

 

 “ 물이라도 떠와줄까 ? 빈속에 계속 음식만 먹자니 힘들어보이는것 같군. ”

 “ 네, 물을 좀 주세요 아저씨. 감사해요 정말. 그리고 지금은 좋아졌어요. 죽을 좀

  먹었더니 정신이 나는것 같기도 하고요. ”

 “ 그래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이고... ”

 

 덕수가 컵에 찬물을 가득 따라주고 유리는 그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 ...성폭행을...당했어요... ”

 

 덕수가 차려준 저녁을 다 먹고나서 거실 소파에 앉아 유리는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덕수가 TV를 켜주었고, 잠시 두 사람은 별다른 말 없이 TV를 보고 있다가 유리가 조심스럽게 입을연다.

 

 “ 성폭행을 ? 아니, 어디서 ? 그 청우일심회란 곳에서 ? ”

 “ 그런건 아니고요... ”

 

 성폭행을 당한적이 있다니. 어린 소녀로선 역시 쉽게 꺼내기 힘든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까지 꺼내는걸로 봐선 유리로선 이제 덕수란 남자에 대해선 경계심이 많이 풀린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유리는 박덕수가 한때 야당 대통령 후보 단일화를 외치며 삭발까지 했었고, 5.18 청문회 당시 스타로 부상하며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까지 물망에 오르내리던 그런 인물이란 사실은 아직까지 모르고 있다. 하긴 박덕수가 정계를 떠난게 벌써 10년전의 일. 90년생인 유리야 초등학교 1,2학년 정도 되었을때 일 아닌가. 따라서 유리가 박덕수에 대해 잘 모르는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 중학교 2학년때였어요... ”

 “ 중학교 2학년 ? 아니, 그 어린나이에 그런 일을 다 겪었었단말야 ? ”

 “ 네. ”

 

 고개를 끄덕이는 유리.

 

 “ 그리고 저희 외할머니께서 원래 그 설봉사란 절을 다니시던 신도셨어요. 헌데

  그곳 주지스님으로 있던 대성사 그분이 어느날 홀연 자기 신도들 수십명을 데리

  고 그 절을 떠났다 하더라구요. 승적은 당연히 그 무렵 박탈되었고, 그리고 세운

  종교가 ‘ 청우일심회 ’란 단체에요. ”

 “ 그...청우일심회가 그렇게 세워진 종교단체란 말이지. ”

 “ 네. ”

 

 또렷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유리.

 

 “ 제가 알기론 청우일심회가 세워진 내력이 대략 그렇다는 이야기에요. 외할머니

  가 대성사님을 따라 청우일심회를 믿기 시작한게 그러니 벌써 십수년전의 일. 제

  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훨씬전의 일이고... ”

 “ 그 청우일심회란 종교 역사가 10여년 정도 된다며 ? ”

 “ 네. ”

 

 덕수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유리.

 

 “ 원래 저희 어머닌 제가 세 살때 아버지와 이혼을 하셨어요. 그리고 제가 일곱

  살때쯤 재혼을 하셨고...그 한 1,2년전쯤부터 전 외할머니 댁에 맡겨져 키워졌

  던거거든요. 그러니 전 어릴때부터 외할머니 따라 아무것도 모르는채 그 청우

  일심회란 종교단체를 따라다니게 된거고요. ”

 “ 그랬었구먼...헌데 그 청우일심회를 세웠다는 교주가 원래 부산의 절에 있던

  스님이라면서. ”

 “ 네. ”

 “ 헌데...그 청우일심회를 탈출한 유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된거지 ? 청우

  일심회란 종교를 부산에서 세운건 아닌가 ? ”

 “ 청우일심회 회관이 지금은 전국에 열두군데 정도 있어요. 그리고 강원도 영

  월에 그 총무원이 있고요. ”

 “ 허면 유리양은 영월에서 탈출해 여기까지 무작정 산길을 따라 걸어온것이란

  말인가 ? ”

 “ 네. ”

 

 산길을 걸어 영월에서 이천까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는 일이다. 유리는 이제 원기를 많이 되찾은듯 눈빛이 빛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뭔가 사연과 한이 많은듯 전체적으로 지쳐있는 인상만은 지우기 힘들다.

 

 

(2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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