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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드라의 소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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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니저 : 최현순  |  멤버 : 9  |  개설일 : 2005/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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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 (4)
  2009/03/08 13:16
최현순      조회 88  추천 0

 

 딸이 집에 돌아오자마자 서현의 어머니 이정화는 그녀를 닦달해댄다. 서현은 전날밤 집에다가는 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하지만 워낙 지금 여러 가지로 불안한 상황에 있는 딸아이다 보니 어머니의 입장에선 걱정이 되지 않을수 없다.

 

 “ 엄마는...친구네 집에서 자고 온다고 말했잖아. 생일파티 했다고. ”

 “ 글쎄...대체 친구 누구 ? ”

 

 귀찮다는듯 다소 짜증조로 서현이 말했지만 정화는 계속 딸을 추궁해댄다. 무엇보다 서현이 방송활동을 중단하고 얼마안가 학교까지 자퇴한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어머니 정화 아닌가. 헌데 난데없이 친구들과 생일파티까지 하고 거기서 자고 온다니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 니가 지금 만나는 학교친구가 있을리는 없고...어디...방송일할 때 알던 친구들

  이야 ? ”

 “ 그냥...그냥 좀 있어... ”

 

 서현으로썬 어쨌든 이 상황을 대충 모면해보려 얼버무리지만 정화도 오늘만큼은 쉬이 물러날 기세는 아닌것 같다. 다만 대체 간밤에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를 추궁하는건 포기하기로 하고 한숨을 한번 내쉰뒤 화제를 돌린다.

 

 “ 이것아...그리고...아무리 그래도 그렇지...오늘은 엄마랑 제대로 이야기 좀 하

  자. ”

 

 그리고는 작정이라도 한듯 서현과 마주앉는다.

 

 “ 무슨 이야기를 하겠다고 그래 지금 ? ”

 “ 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이것아. 너 벌써...아무튼 그 일로 방송 출연 정지당한게

  다섯달전의 일이야.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쭉 틀어박혀있었

  어. 그런데 내가 어떻게 걱정을 안 해 ? ”

 

 “ 엄만...집에만 쭉 틀어박혀 있었던건 아니다. ”

 “ 그래,그래 어디간단 말도 안 하고 날도깨비처럼 불쑥 외출한적은 몇 번 있었지.

  그리고 엄마한텐 일절 상의도 없이 니 멋대로 자퇴까지 했었고. ”

 

 ‘ 날도깨비처럼 불쑥 외출한 일 ’은 대개 승규를 만나러 갔을때의 일일 것이다. 사실상 학교 자퇴

이후에는 승규 외에는 만나는 사람이 전무하다시피 한 서현이기도 하다.

 

 “ 어쨌든 이제 어떻게 할거야. 그래, 니가 알아서 잘 한다고 했으니, 어디 어떻게

  할 건지 니 생각이나 좀 이야기 해 보라구. ”

 “ ...... ”

 

 지금 상황에서 서현인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것인가. 서현이 아무런 대꾸도 없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있자 정화는 그런 딸을 딱하다는듯 바라보더니 한숨을 쉰다.

 

 “ 이것아 어쨌든...그래 그...방송활동 할때 일...너로서도 견디기 힘들었을거란거

  다 이해해. 하지만 그게 벌써 언제 일이냐 ? 이제 그만 털고 일어나야 할거아냐

  . 그리고...말 나온김에 덧붙이지만 학교는 어쩌자구 자퇴한거야. 아닌말로 대학

  을 나와도 취직하기 힘든게 요즘 세상인데... ”

 “ ...엄마... ”

 

 아무리 닦달을 해도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는 아이인양 서현이 대꾸가 없자 더 이야기 해봤자 소용이 없겠다는듯, 제풀에 지치기도 해 체념한듯 일어서려던 정화에게 서현이 불쑥 한마디 내뱉는다.

 

 “ 나...차라리 시집갈까 ? ”

 “ 뭐 ? ”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정화로선 난데없는 서현의 그와같은 말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아무리 생각없는 딸아이기로 이 판국에 시집 운운은 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 막말로...여자야 시집만 잘 가면 그만인거 아냐...엄마...나 차라리 시집보내줘. ”

 

 승규와의 하룻밤까지 보내고 온 서현이다. 게다가 승규는 서현을 책임지마고 몇 번이나 다짐했고. 그런 승규가 여전히 미덥지 못한듯 집 앞 차안에서 다시한번 목을 꼭 끌어안고 약속을 지켜달라는 간절한 애원의 눈빛을 보냈던 서현이다. 하지만 그러한 사정을 알 리 없는 정화의 입장에선 딸의 그러한 난데없는 소리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 이것아 ! 시집은 무슨 혼자만 가니 ? 짝이나 있구 ? 너 좋아한다는 남자라도

  있기나 한 거냐구 ? ”

 

 다섯달 넘게 집에서 두문불출한 딸 서현이다. 게다가 워낙 숫기없고 내성적인 성격이라 친구도 거의 없던 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정화다. 그러니 하물며 그런 서현에게 무슨 남자친구 같은게 생겼을린 만무하다는듯 핀잔조로 내뱉는다.

 

 “ 법적으론...나 2년후부터 결혼 가능하다며 ? 만 18세부터... ”

 

 그래도 승규한테 들은 소리가 있어서인지 제법 똑똑한체 읊조린다. 하지만 정화는 그런 딸의 말에 더 기가 찰 뿐이다. 그런건 또 어디서 주워들어 저런 헛소리를 하느냐는듯 말한다.

 

 “ 이것아 ! 18세고 17세고 간에...시집을 너 혼자 가냐구 ? 상대가 있어야 가지

  . 그리고 아닌말로 니 나이에 시집가서 뭐하니 ? 애가 시집가서 뭐하냐구 ? 결

  혼이 소꿉놀이인줄 알어 ? ”

 “ ...... ”

 

 서현은 속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스무살 연상의 그리고 자신을 드라마에 처음 데뷔시켜준 방송작가 김승규와 사귀고 있다는 말을 대체 어찌 꺼내야할지. 막상 엄마 앞에 앉아있으니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지금 꺼내면 대체 엄마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미지수고. 승규와 함께 있을땐 그저 마냥 모든 것이 꿈길을 것는듯 행복하기만 했는데, 이제 정화앞에 있으니 꿈이 아닌 현실을 서현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 것이다. 입술을 한번 지그시 깨물어본다.

 

 “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그래, 차라리 학교나 마저 다니자. 정 그래 니가 전

  에 다니던 학교는 다시 다니긴 불편할테니...어쨌든 절차를 밟아서 다른 학교에

  서 고등학교 마저 마치게 해줄게. 정 아니면 먼데라도... ”

 “ ...... ”

 

 “ 솔직히 니 아버지도 독자고 엄마도 형제라곤 달랑 남동생 하나뿐이라 어디 널

  멀리 보낼수 있는 그런 시골이나 지방 친척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어디

  마냥 죽으란 법이야 있겠니 ? 친구를 통해서든 아니면 다른 인편을 통해서든 너

  어디 다른 지방이나 시골에서 고등학교 마저 마칠수 있게 조치를 취해볼게. 그

  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

 

 정화의 생각엔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에선 딸이 남은 고등학교 과정이라도 마저 마치는게 가장 합리적인 일일것 같아 이렇게 구체적인 대안까지 내놓는 것이다. 허나 서현은 여전히 대꾸가 없다.

 

 “ 싫어... ”

 

 한참만에 그렇게 짤막하게 내뱉는 서현.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사뭇 단정조로 말한다.

 

 “ 시집갈래 나 그냥. ”

 

 하도 어이가 없고 화도 나서 정화는 방 한쪽 구석에 있는 책자 하나를 서현에게 집어던지기 까지 한다. 정화가 원래 성품은 너그러운 여자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에선 그녀도 참는데 한도가 있다.

 

 “ 보자보자하니까 정말...에미는 그래도 너 걱정되어 이렇게 심각하게 구체적으로

  대안까지 마련해주는데...너 진짜 말도 안되는 소리 자꾸 할래 ? 농담도 할 때가

  있고 안 할때가 있지... ”

 

 ‘ 엄마... ’

 

 서현은 차마 입 밖으론 내밀지 못하고 속으로 고민만 하며 웅얼거리고 있다. 정화는 시집가겠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말도 안되는 소리만 내뱉는 딸이 한심하다는듯 혀만 끌끌차고 일단 방에서 나간다. 그러나 정화가 방에서 나가자 서현은 방문쪽을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며 아까 차마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지막히나마 중얼거린다.

 

 ‘ 나 사실...좋아하는 사람 생겼어 엄마... ’

 

 


 다시 두달정도의 시간이 지나 연말인 12월이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아 성탄 트리 장식과 캐럴로 가득한 도심 어느 거리를 승규와 서현이 함께 거닐고 있다. 하늘이 희뿌옇더니 언제부터인가 눈이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승규는 서현과 함께 인근 한 공원으로 들어가 그곳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 서현아... ”

 “ 왜 오빠 ? ”

 “ 오빠가 드라마 작가를 하게 되면서... ”

 “ ??? ”

 “ 꼭 한번 정말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가 뭔지 아니 ? ”

 

 방송작가 생활 10년차인 승규. 처음 2-3년간은 보조작가로 활동하다 승규는 2천년대 초반에 어찌보면 다소 행운처럼 한 사극 집필을 맡게 되었다. 원래 50대의 사극 전문 작가가 집필을 하게 되어있었고, 승규는 그 보조역활을 하게 되었었는데, 갑자기 그 작가가 건강에 심한 이상에 생겨 더 이상 드라마를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천만 뜻밖의 행운으로 승규가 그 사극 집필을 맡게 되었고, 작품은 예상외의 히트를 쳤다. 승규로썬 그야말로 대타로 집필에 나섰다가 만루홈런을 친 격이었다. 어릴때부터 역사 매니아이기도 했던 승규니 사극 집필은 그 누구보다 자신있었던 그 이지만.

 

 하지만 승규의 첫 히트작이 사극이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극작가의 이미지로 굳어지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승규가 지난 10년간 쓴 사극은 금년에 집필한 작품을 포함 모두 세편이었다. 그러니 보조작가에서 메인작가로 데뷔한 첫 작품격인 사극과 그리고 2천년대 중반격에 또 한차례 집필을 맡았던 사극. 그리고 금년에 쓴 작품까지 모두 세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외엔 두편의 일일극과 한편의 미니시리즈였다. 첫 데뷔작격이었던 사극 집필이 마무리되고 반년쯤 지났을때 한 아침드라마를 맡게 되었고, 그 반응이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그 작품을 마무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아침 드라마를 쓰게 되었던 것이고, 승규가 두 번째 사극 집필을 하게 된 것은 2005-06년 경의 일이다. 하지만 승규의 작품은 일일극보다 대체로 사극이 더 많은 주목을 받아 승규의 이미지는 사극작가로 굳어진지 오래다.

 

 “ 솔직히 지금와서 하게 되는 이야기지만... ”

 “ ...... ”

 “ 내가 드라마 작가에 데뷔한것 자체가...뭐랄까...좀 우연찮게 된 일인 셈이기도

  해. ”

 

 “ 우연...찮게 ? ”

 “ 응. ”

 

 고개를 끄덕이는 승규. 학창시절엔 워낙 극심한 왕따에 시달렸고, 친구도 거의 없었던 승규. 그런 승규이기에 중,고등학교 시절엔 주로 집에서 역사소설따위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적이 많았다. 50권 가까이에 달하는 신봉승의 소설 ‘ 조선왕조 5백년 ’을 독파했던것도 그때의 일이니까.

 

그뿐만 아니라 웬만큼 잘 알려진 국내의 역사소설은 물론 중국의 고전소설도 거의 섭렵하다시피했고. 그러다보니 승규의 역사에 대한 탐구열은 더욱 강해져 직접 삼국사기나 고려사는 물론 중국의 사서까지 직접 구해 읽는 지경에까지 달했다. 승규가 학창시절 그정도의 역사 매니아였는지는 승규의 학교 친구들은 물론 국사선생이나 담임 선생님 조차도 몰랐으리라.

 

여하튼 그정도의 역사 매니아였던 승규지만. 대학은 좀 엉뚱하게 철학과에 진학했고,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학을 진학하고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선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하고 얼마안가 짤리기 일쑤였고, 그런 승규가 작가가 한번 되어볼까 하고 드라마 극본 공모에 응모를 하기 시작한것은 90년대 중반의 일이었다.

 

 두어차례 도전해보았다 미역국을 먹었고 97년에 공모한 한 작품이 당선되어 그때부터 방송작가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승규의 첫 도전작은 사극은 아니었고 현대물이었다. 당시 승규의 작품을 심사한 심사위원은 등장인물간의 미세한 심리묘사가 돋보인다는 평을 하기도 했다. 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승규의 이야기는 계속된다.

 

 “ 사실은 한번쯤... ”

 “ ...... ”

 “ 재혼가정의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해보았어. 한 10년전쯤

  부터... ”

 

 “ 재혼가정 ? ”

 “ 응. ”

 

 고개를 끄덕이는 승규.

 

 “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
“ ...... ”

 “ 새엄마의 이야기를 중심 테마로 한 그런 일일극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거든. ”

 “ 새엄마의 이야기 ? 왜 ? ”

 “ 글쎄... ”

 

 승규는 묘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 솔직히 말하자면... ”

 “ ...... ”

 “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어. ”

 “ 그런게 어디있어. ”

 

 새엄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일일극을 써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고도 정작 그 이유를 물어보니 나도 잘 모르겠다 말하는 승규. 서현으로썬 이해가 안 가기도 하고 좀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 그냥 뭐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

 “ ...... ”

 “ 그냥 단지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그냥 뭐...어떤

  운명이라고 말할수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어찌되었든 뭐 그런... ”

 “ ...... ”

 

 “ 뭐랄까...시높시스를 한번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저절로 발상이 그런쪽으로

  흐르게 돼. 그것도 여러 가지 종류의 새엄마가 나오는 이야기. 전처 소생 아이를

  헌신적으로 키우는 그런 모성형 새엄마, 혹은 사춘기 소년과 젊은 새엄마간에 플

  라토닉적인 묘한 감정이 오가는 그런 복잡한 감성과 인간관계를 그려나가는 그런

  새엄마 이야기, 아니면 흔히 보게되는 동화속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악역의 새엄

  마까지... ”

 

 승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침을 한번 꿀꺽 삼킨다.

 

 “ 그냥 그런 다양한 종류의 새엄마 이야기를 드라마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자

  꾸만 하게 돼. ”

 “ ...... ”

 “ 솔직히 그런데 나도 왜 자꾸 그런 생각이 드는지 그 이유는 잘 모르겠어. ”

 

 서현은 공연히 입술을 약간 삐죽 내밀어본다. 새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한번쯤 드라마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정작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냥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 뿐. 이런 승규의 심리상태와 정신상태는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 오빠...춥다... ”

 

 승규의 이야기도 좀 썰렁했지만 날씨도 추웠다. 눈발도 조금 거세어져 가는것 같다. 춥다는 서현의 말에 승규는 그녀와 함께 공원에서 나와 인근의 한 찻집으로 들어간다. 따스한 차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이야기를 나눈다.

 

 “ 오빠...근데... ”

 

 승규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현. 뭔가 중요하거나 작심한 이야기를 할땐 서현은 긴장하며 고개를 살포시 숙이는 버릇이 있었다. 그럴땐 심지어 얼굴이 빨개지기까지 한다. 그런 서현이건만 오늘은 그녀답지 않게 승규를 거의 정면으로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떨리는 음성은 여전히지만.

 

 “ 우리...결혼 하는거...우리 엄마,아빠한테 정식으로 말씀드리고 승낙 받을까 ? ”

 “ 뭐 ? ”

 

 이미 서현에게 몇 번이고 오빠만 믿으라고 다짐했던 승규이건만 정작 서현이 이렇게 이야기 하면 당혹스러운듯 되묻는 승규다. 승규가 서현에게 다짐했던 말이 결코 진심이 아닌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승규와 서현은 특별한 커플 아닌가. 막상 정작 서현의 부모님 승낙을 받는 문제를 생각하면 망설여지고 어찌 말해야될지 고민이 생길 수밖에 없는 문제다.

 

 “ 언젠가 한번쯤...부딪혀야 할 문제긴 한데... ”

 “ 그러니까...이제 그만 말씀 드리자구... ”

 “ 솔직히 좀 두렵다. 막상 우리 사일 부모님께 말씀드릴 생각을 하니... ”

 

 그거야 서현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지만 기왕지사 둘의 사이가 이렇게 까지 발전한 마당에 더 이상 시간만 끌고싶진 않은게 서현의 생각이었다. 더욱이 서현은 대체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엄마의 성화와 닦달을 더 이상 견뎌낼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승규를 만나러 갈때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빠져 나오는 길도 한계가 있을수밖에 없다.

 

 “ 서현아... ”

 “ 응, 오빠. ”

 “ 다른건 몰라두. 너랑 결혼하고 싶은 내 마음은 진심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날 사랑해주는 그 마음 자체가 난 너무 고맙고. ”

 “ ...... ”

 

 “ 하지만 솔직히 두려운건 사실이구나. 서현이 부모님한테 승낙받는 문제. 과연

  어떻게 하면 허락을 받을수 있을지... ”

 “ 오빠... ”

 “ ...... ”

 “ 이제 그만...말씀 드리자... ”

 

 승규를 거듭 보채는 서현. 승규의 가슴이 다시 떨려온다. 흔히 하는 말처럼 매도 먼저 맞는게 났고 예방주사도 어차피 맞을거 자꾸 뒤로 피하느니 먼저 찔끔 아프고 편하게 교실 의자에 앉아 다른 아이들 주사맞는거 구경하는거 보는게 훨씬 여유있고 마음도 편하다. 어차피 이 일도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면 1년후나 2년후에 하는것보담은 일찌감치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게 났다.

 

 “ 그래... ”

 

 결심한듯 들고있던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승규. 하지만 그런 승규의 손목이 심하게 떨리고 있다. 어쨌든 이건 학교에서 예방주사 맞는것과는 다른 문제 아닌가. 자신의 남은 여생을, 그리고 아직 어린 서현의 일생을 책임지는 그 결정을 하는 중요한 순간이다. 무엇보다 작년 이맘때까지만 해도 결혼할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던 그런 승규 아닌가.

 

 “ 서현아... ”

 “ 응, 오빠. ”

 “ 다른건 몰라도... ”

 “ ...... ”

 “ 지금 난 니가 너무 좋다. ”

 

 승규는 울먹거리기까지 한다. 서현의 볼을 한번 어루만진다.

 

 “ 귀여운 것... ”

 

 주위 시선은 의식하지도 않은채 서현의 볼을 한번 토닥토닥 두드려보고 그녀의 코를 두 손으로 살짝 잡아 흔들어보기도 한다. 서현은 약간 앙탈을 부린다. 하지만 그런 서현의 모습이 승규에겐 더 귀여워 죽겠다. 와락 서현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는 승규.

 

 “ 사랑한다 서현아... ”

 “ 오빠... ”

 

 주위의 눈도 있으니 서현으로썬 좀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아랑곳없이 서현을 안은채 마구 그녀의 볼을 부벼보는 승규.

 

 “ 사랑해 서현아...정말...나 지금 이대로...너 아니면 하루도 못 살것 같다. 결혼

  하자 서현아...사랑한다 서현아...정말...너무나...너 아니면 나 못 살것 같아. ”

 

 서른일곱살의 승규. 너무나 외롭고 힘들게 살아온 승규. 그저 단순한 노총각으로써의 외로움이기 전에 학창시절때부터 극심한 왕따에 시달렸고, 20대때도 제대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긴 방황의 시간을 보낸 승규. 그런 승규이기에 처음 느껴보는 사랑의 감정 앞에서 절제심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승규의 사연을 아는 사람이 혹 있다면 지금 와락 서현을 끌어안은채 마냥 애정표현을 하는 그의 모습이 슬프게 느껴질수도 있을것이다. 애정결핍에 시달려온 한 30대 후반의 남자가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덫에 걸려 주체하지 못하고 토해내는 그만의 감정이.


 

 

 며칠후, 서현은 결국 작정하고 승규와의 관계를 어머니 정화에게 말하기로 했다. 할말이 있다며 거실에서 정화와 마주앉은 서현.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키려는듯 물을 한모금 마시고 제법 단호한 어조로 말한다.

 

 “ 엄마 ! ”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아침부터 이러는 것인지. 방송출연 정지를 당하고, 학교까지 자퇴한 후 도대체 아무런 대책도 없이 사는것만 같은 딸아이를 딱하고 한심하다는듯 여기고 있던 정화로선 오늘 서현의 결연해보이기 까지 하는 태도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 나...시집갈래 ! ”

 

 저번에도 한번 그 소리 하더니 또 그 이야긴가. 정화는 실소를 터트린다.

 

 “ 아침부터 쓸데없는 소리나 하려거든 그만 둬. 얘가 일 나가야 하는 사람을 붙

  잡아 놓구선. ”

 

 한편 직장에서 해고당한 서현의 아버지는 두어달전쯤에서야 겨우 서현이 방송출연등으로 번 돈 게다가 약간의 사채까지 포함해서 그 돈으로 어쨌든 인근에 작은 식당을 하나 차릴수 있었다. 그 식당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기 시작한지 이제 두달 정도가 지난 것이다.

 

 “ 농담 아니야. ”

 

 아직도 철딱서니 없는 딸아이가 괜히 실없는 소리 또 하는것 처럼 여겼던 정화. 그러나 서현은 단호한 어조라 다시한번 말한다.

 

 “ 나 사귀는 사람 생겼어. 좋아하는 사람 생겼다구. ”

 “ 뭐 ? ”

 

 농담으로 여겼는데 딸이 계속 이런식으로 나오니 정화도 짜증이 난다. 대체 아침에 일 나가야 하는 사람 붙잡고 이 무슨 쓸데없는 짓인지 모르겠다.

 

 “ 사실이야. 그동안 친구 만나러 나간다고 했던거 다 거짓말이었어. 나 그동안 좋

  아하는 사람 생겼어. 사실은 지난번 생일때도 그 오빠 집에서 잤던거구. 오빠가

  나보고 결혼하재. 나도 오빠 사랑하고. ”

 “ 뭐...뭐 ? 오빠 ? ”

 

 딸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정화도 슬슬 불길한 예감이 든다. 하지만 그래도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한번 말한다.

 

 “ 너 자꾸 헛소리하면 엄마한테 맞는다. ”

 “ 장난 아니라니까 ! ”

 

 엄마는 아직도 자신을 철없는 어린아이로 여기고 있는 것일까. 자신은 심각하게 말하고 있는데,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정화의 태도에 서현도 조금 부아가 난다.

 

 “ 나이가 좀 많아. 나랑 스무살 차이야. 하지만 오빠 나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했

  어. 책임진다고 말 했다구. 그래서 오늘 엄마한테 정식으로 말하고 결혼허락 받

  으려구 이러는거야. ”

 “ 아니...너...너 정말 ? ”

 

 이렇게까지 나오니 정화도 그제서야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닌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서현의 말이 이어진다.

 

 “ 실은...나 연기자로 데뷔시켜주셨던 선생님이야. 지금은 오빠라 부르지만...나 보

  조연기자 아르바이트 할때...사극 출연했다가 거기서 아역 주인공으로 발탁된 거

  였었잖아. 바로 그 사극 작가 선생님. 김승규. 그래, 지금까지 승규오빠 만나고

  다닌거였어. ”

 “ 뭐...뭐... ??? ”

 

 계속 이어지는 딸의 이야기에 정화는 놀라울 따름이다. 말은 하고 있지만, 정화의 반응이 어찌 나올지 몰라 서현의 속 마음은 떨리고 있었다.

 

 “ 만 18세면 법적으로 결혼할수 있다며 ? 엄마 허락 받아서. 그러니 허락시켜줘.

  이대로 오빠랑 연애하다 2년후에 결혼하면 되잖아. ”



(5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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