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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보행권(步行權)
  2008/06/19 10:18
카페진      조회 277  추천 0

김홍진 논설위원

 

1897년 고종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경복궁을 버리고 경운궁, 지금의 덕수궁으로 옮겼다. 성종의 형 월산대군 집이었던 경운궁은 외국 공관들에 땅을 내주는 바람에 더 좁아졌다. 그래서 종로에서 서대문으로 이어지는 길 건너편 경희궁을 고쳐 하나의 궁궐로 쓰기로 했다. 1901년 8월 독일 기사의 설계로 두 궁을 연결하는 보도(步道) 육교를 지었다. 이 쌍무지개 모양 화강암 육교가 이 땅 최초의 육교였다.


▶1850년 뉴욕 브로드웨이 번화가에 마차 통행량이 많아 사람들이 길을 건널 수 없자 첫 육교가 등장했다. 일본에선 1950년대 말 자동차가 급증, 교통사고 사망자가 1만명까지 늘면서 육교를 짓기 시작했다. 1959년 나고야(名古屋) 육교가 처음이다. 굴착기술이 발달하면서 도시 미관을 고려한 지하도도 만들어졌다. 1861년 런던에 들어선 것이 세계 최초다.


▶1966년 서울시장에 부임한 김현옥은 육교 144개와 지하 보도 10여개를 만들었다. 청계고가도로와 삼각지 고가로터리도 이때 지었다. 1967년 선보인 서울 지하상가는 1975년 베트남 공산화로 대피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따라 광화문·종로·을지로를 순환 연결한 대규모 지하시설로 탈바꿈했다. 이어 지하철이 개통되면서 도심 건널목 횡단보도는 아예 없어졌고 사람들은 지하로만 다녀야 했다.

▶지금 서울 시내엔 육교가 220여개, 지하보도가 81곳 있다. 서울은 외국인들에게 걷는 게 '불편'하고 '불안'하며 차를 타는 것보다 '불리'한 보행삼불(步行三不) 도시로 통해왔다. 엊그제 서울시가 지하도만 있고 지상 횡단보도가 없는 종로와 을지로, 잠실 등 주요 교차로 111곳에 횡단보도를 놓겠다고 발표했다. 육교나 지하도로부터 200m 안에는 횡단보도를 두지 못하게 한 법규 개정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차량통행을 되도록 줄여 대중교통 중심, 보행자 중심의 도심을 만드는 게 서울시 정책방향이다. 차로는 줄이고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넓히는 것이다. 오랜 세월 시민들은 육교·지하도를 자연스런 보행 통로로 여겼었다. 실은 자동차에 사람의 보행권(步行權)을 빼앗긴 결과라는 인식은 최근에야 퍼졌다. 보행권을 되찾자는 시민들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전국 주요 도시에도 횡단보도가 새로 그어지고 있다. 고(高)유가를 극복하고 웰빙도 챙기는 걷기, 자전거 타기의 물결이 도심에까지 일기를 기대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18/20080618016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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