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아픔 그린 '크로싱' 김태균 감독
정치가 아닌 인권에 관한 영화 북한의 현실 너무 참혹해
10분의 1 정도로 순화해 묘사
어수웅 기자
그는 충만(充滿)해 보였다. 3개월 전의 불안과 긴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영화 '크로싱'(26일 개봉)의 김태균(48) 감독. "(96년 데뷔 이후) 지금까지 영화를 만들고 나서 관객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할 때, 그의 목소리는 수줍게 갈라졌다.
차인표·신명철 주연의 '크로싱'은 북한의 참상과 탈북의 아픔을 본격적으로 그린 작품. 폐결핵에 걸린 아내의 약을 구하기 위해 중국으로 탈북한 탄광촌의 용수(차인표)가 계속해서 가족과 엇갈리는 비극의 드라마다.
지난 3월만 해도 개봉 여부조차 불투명했지만, 미국 의회도서관을 눈물바다로 만든 특별 상영 등 여러 감동적인 소식이 알려지면서 대중의 호응이 잇따랐다. 10만 명을 목표로 시사회를 시작했고, 18일까지 벌써 8만5000명이 넘는 관객이 이 영화의 진심에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영화를 본 한 목사님은 "거룩한 (양심의) 고문을 받은 느낌"이라고 감독에게 말했다. 비록 불편한 진실이지만, 인권이라는 존엄한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크로싱'은 일반인의 예상과 달리 신파 드라마의 문법을 최대한 자제하는 영화다. 병들고 굶주린 엄마(서영화)가 세상을 떠날 때도, 홀로 남겨진 열한 살 준이(신명철)가 수용소에서 갖은 고초를 겪는 순간에도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다가가기보다는 자꾸만 뒤로 물러선다. 김 감독은 "그러지 않아도 힘든 이야기인데 관객들을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면서 "울게 만들기보다는 먹먹하게 만들고 싶었고, 한 번쯤 더 생각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관객들의 눈물은 그치지 않는다. 김 감독은 "처음에는 정치적 편견을 지닌 사람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볼까 걱정했었다"면서 "정치가 아니라 인권에 관한 영화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관객들이 동의한 것 같다"며 고마워했다.
영화를 만들던 내내 그를 가장 괴롭혔던 건 '리얼리티'. 어떤 영화감독이든지 사실성과 디테일에 대한 집착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소재로 한 만큼 고민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김 감독은 "실제 탈북자들이 인정해 준 영화라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면서 "사실 영화를 현실 그대로 묘사하면 도저히 관객들이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10분의 1 정도로 순화해서 표현했다"고 했다.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신인 배우가 있다. 아버지를 찾아 두만강을 건너는 열한 살 준이 역의 신명철. 영화를 찍었던 지난해, 명철이는 전교생이 고작 25명인 충북 영동 시골 분교의 6학년 학생이었다. 김 감독은 "깎은 듯한 외모와 연기를 보여주는 아역 배우들이 많았지만 자꾸만 명철이의 선한 모습이 눈에 밟혔다"면서 "믿을 수 없이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한 배우"라고 칭찬했다.
영화 '크로싱'은 감독 개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인 함경도 고원은 세상을 떠난 부친의 고향이다. 그는 "영화를 본 작은아버님이 (나를) 끌어안아 주시더라"고 겸연쩍게 고백했다. 그는 "솔직히 지금 북한의 지도자들은 국민을 인질로 잡고 협박을 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그들을 굶어 죽도록 놔두는 건 죄악"이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사실 재미로 중무장한 블록버스터들이 포진한 여름 극장가에서 '크로싱'은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를 본 지금, '거룩한 고문'이라는 표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마땅히 당해야 할, 그리고 후회하지 않을 고문이 될 것이다.